‘나’라는 정체성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물으면 뭐라 대답할지 막막해진다. 그저 “나는 나다”라고 말하면 되는 것일까. 신체적 특성을 말하고, 인종적 또는 민족적 소속을 말하고, 이름을 말하고, 고향을 말하고, 학력을 말하고, 직업을 말하면 그것이 곧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 외적 표징 속에서 드러나는 내가 곧 나일까. 외형적 정체성을 통해 나는 나임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외적 특성보다는 내면적 특성이 어쩌면 더 많이 나의 정체성을 규정할 것이다. 흔히 사람에게는 이성과 감정과 의지의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세 영역 모두가 한 사람의 정체성 형성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강조되는 영역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이성적 영역이 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감성과 정서적 영역이 그의 정체성 형성에 더 중요한 요소로 작동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성적 사유나 감정적 체험의 영역보다는 의지적 실천의 영역을 통해 그의 정체성과 특성이 더 잘 표현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지닌 사유의 성향, 감정과 욕망의 작동 방식, 삶의 자리에서 표현되는 의지적 성향을 통해 그 사람의 정체성과 특성을 식별할 수 있다. 과연 나는 나의 내면적 특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나의 정체성은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의 총합을 통해 표현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 즉 가족 관계, 친구 관계, 타자들과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나의 정체성이 표현되고 실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안에서 나의 정체성 또는 특성이 드러난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의 친구들을 보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외형적 모습이 나일 수도 있고, 나의 내면적 특성이 나의 개성과 고유성을 표현할 수도 있고, 살아가면서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이 나라는 사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된다. 어린 시절의 나도 나이고, 학창 시절의 나도 나이지만,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내 삶의 여정에서 변화되고 형성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살아온 내 삶의 궤적, 내 삶의 역사가 곧 나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내가 살아온 모습이 곧 나라는 것,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곧 나다. 자아(ego)는 언제나 일종의 자서전적 자아(autobiographical ego)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셰익스피어). 나의 정체성은 나의 외형적 특성, 내면적 특성, 관계적 특성, 역사적 특성, 그 모든 영역을 통해 표현되는 것일까. 물론 나의 외형적 특성보다는 나의 실존적이고 내면적인 어떤 특성들이, 내가 맺고 있는 관계적 차원들이,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 삶의 현장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의 궤적이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들로 작동될 것이다. 그런데 혹시 무언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존재론적(형이상학적) 본질이 따로 있는 것일까.
‘신앙인’이라는 정체성
나는 신앙인으로 살아간다. 신앙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표현되고 구현되는 것일까.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사도 요한이라는 세례명으로 유아 세례를 받고 뒤늦게 사제가 되어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내 신앙적 정체성의 핵심일까. 그것은 그저 외형적 정체성이 아닌가. 모든 신앙인 역시 세례와 견진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성사 생활을 지속함으로써 신앙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사람의 정체성이 외적 형식의 특성보다는 내적 특성, 관계적 특성, 역사적 특성을 통해 더 잘 구현되는 것처럼, 신앙인의 정체성 역시 통합적일 것이다. 성당에 다니고, 종교적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신앙인의 정체성 구축에 가장 기초적인 요소일 뿐이다. 신앙인의 진정한 또는 통합적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고 구현되는 것일까. 신앙인 정체성 형성에 핵심적 요소는 무엇일까.
신앙인의 내면적 특성은 무엇일까. 신앙인이 지닌 신앙과 영성의 내면적 특성은 무엇일까. 하느님 신비에 관한 이성적 탐구를 좋아하는 모습으로 드러날 수도 있고, 신학적 지식과 교리적 공부는 부족해도 감정과 정서적 측면에서 하느님에 대한 체험적 특성을 보여 주는 모습이 있을 수 있고, 하느님에 관한 앎과 체험적 측면이 부족하다 해도 의지적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모습이 있을 수 있다. 신앙인의 내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에, 그가 가진 성향과 기질에 따라, 이성 중심적, 감정 중심적, 의지 중심적 특성을 드러낼 수 있다.
신앙인의 관계적 특성은 무엇보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신앙인의 정체성 역시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어떤 특성을 보여 줄 수 있다. 하지만 신앙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하느님과의 관계성일 것이다. 한 신앙인이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성서적,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신앙인과 하느님과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다. 신앙인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다. 하지만 한 신앙인이 하느님과 맺고 있는 그 관계의 내적 친밀성과 영성적 특성이 어떠한지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 하느님과의 신앙적 관계는 신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앙인이라는 정체성은 그가 고백하는 신앙적 신념, 신앙적 자세와 태도, 일상 안에서 신앙을 살아 내는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 신앙인의 신앙적 넓이와 영성적 깊이는 그 사람의 신념, 자세와 태도,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표현된다.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 역시 그 사람의 신앙적 신념, 신앙적 자세와 태도, 신앙을 살아 내는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다. 신념, 자세와 태도, 살아가는 방식은 언제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특히 신념은 단순히 인식과 생각과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인식의 차원에서의 신념은 대부분 선택적이다. “그들이 내세에 대한 실체를 일종의 소중한 비밀로 간직했듯이 나는 내세는 없다는 깨달음을 소중한 비밀로 간직했다.”1) 생각과 말로 표현되는 단순한 선택적 신념이 아니라 진정한 신념은 오직 자세와 태도,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표현된다.
수행적 정체성
정체성은 한 번의 사건으로 규정될 수 없다. 정체성은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은 형성되고 성장하고 변하는 것이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앙적 정체성을 부여받았지만, 그 신앙적 정체성은 늘 쇄신되고 성장해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과 맺는 관계는 신앙의 신비다. 그 관계의 존재론적 본질을 우리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그 관계가 성사적(가시적)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통해, 즉 수행적 여정을 통해 유비적(analogical)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신앙을 수행한다는 것은 종교적 행위만을 단순히 반복한다는 것이 아니다. 삶의 전 여정에서 올바른 신앙적 신념을 키워 가는 일이며, 사람과 사건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자세와 태도를 몸에 배게 하는 일이며, 일상의 모든 자리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방식으로 살아 내는 일이다.
신앙은 살아 내는 일이며 수행하는 일이다. 신앙인의 정체성은 삶의 모든 시간과 모든 자리에서 수행하는 과정 안에서 형성되고 성장하는 것이다. 모든 신앙인은 본질적으로 수도자(修道者)이며 수행자(修行者)다.
응대 방식, 소명 의식, 종말론적 지향
신념은 자세와 태도로 표현된다. 신앙인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사람들과 사건들을 응대하는 자세와 태도에서 드러난다. 나에게 다가오는 운명적 사건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가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응대하는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자세와 태도로, 복음과 신앙의 방식으로 응대하고 있는지가 신앙인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형성한다.
세속의 기준으로 보면 삶은 그냥 사는 일이다. 삶의 목적과 지향을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삶을 향유하면 된다. 하지만 신앙인의 삶은 하느님에 의해 소명이 부여된 삶이다. 개신교적 표현이지만 신앙인의 삶은 “목적이 이끄는 삶”(릭 워렌)이다.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소명을 의식하며 사는 것과 그냥 사는 것은 분명 다르다. 주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 생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신앙 안에서 지금 여기서 주님과 함께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이 신앙인 정체성의 핵심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과거와 현재가 결정하는가, 아니면 미래가 결정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보면, 정체성은 과거와 현재가 중요하다. 그가 살아온 모습이 곧 그다. 그리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곧 그다. 하지만 신앙인은 과거와 현재에 의해 자신을 규정하기보다는 (시간적이라기보다는 종말론적) 미래의 지향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실 미래의 가능성이, 미래를 향한 어떤 목적과 지향이 그를 더 잘 규정할 수 있다.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건, 지금의 현실이 초라하고 남루한 삶이라 해도 미래에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신앙인이다. 신앙인은 종말론적 완성을 믿는 사람이 아닌가. 절망이 가득한 현재와 현실이라 해도 주님을 향한 희망으로 지금 여기를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이 신앙인이다.
생의 여정에서 다가오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어떻게 응대하고 있는지, 성화(聖化)와 복음화에 대한 소명 의식을 벼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과거와 현실을 직시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희망의 순례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고 찾고 성찰하고 수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이다.
1) 제임스 우드,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아를, 2025, 39.
정희완 신부
안동교구 사제.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을 전공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오래 강의했고, 지금은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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