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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안동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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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 성인

안동교구 제1주보 성인 -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안동교구 제1주보 성인

비오 9세 교황은 1854년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통해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교의로 선포했다. 하느님은 마리아를 죄로 향하는 근본적인 경향으로부터 특별히 보호하심으로써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는 사실이 교의로 선포된 것이다. 그리고 1858년, 프랑스 루르드에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해 자신을 ‘원죄 없으신 마리아’로 밝히면서 확증됐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는 한국교회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제2대 조선 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는 한국 신자들의 성모 신심을 칭송하면서 1838년 교황청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 수호성인으로 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3년 뒤인 184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조선대목구 수호성인으로 성 요셉과 함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선포했다. 현재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가 한국교회의 수호성인이다. 1969년 5월 29일 안동교구가 설정되면서 초대 교구장 두봉 주교는 주교좌 목성동 성당 주보 성인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안동교구 주보성인으로 선포 하였다.

안동교구 제2주보 - 복자 박상근 마티아(1836-1866)

안동교구 제2주보 성인

박상근 마티아는 경상도 문경현 토박이로 아전(하급관리)을 지내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였고, 관아에 있으면서 신자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숙모 홍 마리아와 친척들은 물론 이웃 사람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열심히 가르쳤고 어린이들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으면, 언제든지 그곳으로 달려가 대세를 주었다 전해진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숙모 홍 마리아와 친척 박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되어 1867년 1월, 30세의 나이로 상주 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형이 집행되기 전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를 불렀다고 전한다. 순교 후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고향에 안장하였고, 2014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시복의 영예를 얻었다. 그리고 이듬해 2015년 5월 29일 교구 설정 기념일에 복자 박상근 마티아 순교자 기념 및 교구 제2주보 선포 미사를 통하여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복자 박상근 마티아를 교구 제2주보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깔래 강 신부와 믿음 안에서의 우정
1866년 3월 중순경 병인박해 때 박상근 마티아는 좁쌀을 사기 위해 한실(현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로 갔다가 당시 조선에서 선교하던 중에 박해를 피해 한실 교우 촌에 숨어있던 프랑스 선교사 깔래 신부를 만났다. 목숨을 걸어야 할 위험한 상황에도 그는 신부를 문경 자신의 집에 숨겨 주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집 마저 발각되자 깔래 신부는 문경을 빠져나와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가야 했다.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 다시 한실로 향하던 그 길에도 마티아는 동행하며 그 곁을 지켰다. 굶은 상태로 산 속을 헤매다 깔래 신부는 그에게 돌아가라 하였고, 끝까지 버티던 그는 결국 깔래 신부와 눈물의 이별을 해야만 했다. 깔래 신부는 산길을 계속 갔지만, 마티아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깔래 신부를 울며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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