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곡 성지는 한국 최초의 수덕자로서 『칠극』의 가르침을 따라 천주교 수계 생활을 28년 동안 이어 온 농은 홍유한(1726-1785년)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홍유한은 명문가 풍산 홍씨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16세 때부터 유명한 실학자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러다가 1750년경부터 성호 이익의 제자들과 함께 『천주실의』, 『칠극』 등 서학을 연구할 때, 그는 다른 제자들보다 깨달은 바가 남달리 커서 1757년경에는 서울의 살림을 정리하고 충청남도 예산으로 내려가서 『칠극』에 따라 18년 동안 혼자 천주교 수계 생활을 하였다.
1775년에는 경상도 땅 순흥 고을 구고리로 와서 10년 동안 수계 생활을 더욱 철저히 하다가 60세인 1785년 1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축일표(祝日表)도 없고 기도책도 없이 7일마다 축일(주일)이 온다는 것만 알고 매월 7일, 14일, 21일, 28일에는 경건하게 쉬고 속세의 모든 일을 물리치고 기도에 전념하였다.
또 금육일을 몰랐으므로 언제나 좋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선생의 본관은 풍산(豊山 )이고, 부친 홍창보(洪昌輔)와 어머니 창녕 성씨(昌寧 成氏) 사이에서 1726년(영조 2년) 서울 아현동에서 출생하였다. 자(字)는 성문(聖文)이며 호(號)는 농은(隴隱)이다. 1742년 16세에 부친의 권고로 당대의 대 유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문하생으로 들어갔으며 수학 중 특히 『천실주의』, 『칠극』 등 천주학(天主學)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757년부터는 권철신(權哲身) · 이기양(李基讓) · 홍낙민(洪樂敏) 등과 더불어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들여와 신앙 공동체를 만들기로 다짐하였고, 자신부터 먼저 신앙적 수계생활(守誡生活)을 시작하였다. 홍유한은 충청남도 예산으로 내려가서 '칠극'에 따라 18년 동안 혼자 천주교 수계생활을 시작한다.
홍유한 선생 가계 가운데 그 분의 뜻을 이어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거안 순교자들은 13명이 나 된다. 후손들이 선조 순교자들을 현양하기를 원했으나 각지에 흩어져 있는 선조 순교자들의 유해를 찾을 길 없어 고심하던 중, 선조인 홍유한 선생의 묘소가 있는 이곳에 13위 순교자들의 가묘라도 함께 모실 것을 안동교구에 청하였고, 교구는 이들의 신앙적 열성을 받아들여 후손과 함께 교구 설정 40주년이 되는 2009년 5월 29일 13위 순교 선조들이 순교한 각 순교터의 흙을 담아 가묘를 조성하고 비를 세워 현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