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실 교우촌은 백두대간을 잇는 백화산(1063m)과 뇌정산(991m) 사이 8부 능선 상에 있으며 산 정상을 넘으면 괴산군 연풍 지역이다. 한실 교우촌 형성시기는1801년 신유박해 전후이며 병인박해(1866년)때까지 오랫동안 존속한 교우촌으로 다른 지역에서 밀려드는 신자들에게 경상도 지방의교우촌을 소개해주고 동시에 타지방으로 이동하려는 신자들에게 휴식처 및 정보 교환의 가교 역할을 하던 곳이다.
<교우촌 순교자> 서태순(베드로), 김 아우구스티노, 김 토마스, 김 아우구스티노, 김 베네딕토, 김 빈첸시오, 김 프란치스코, 김 서방, 장서방, 장서방의 아내, 김 요셉, 김 베드로, 모 막달레나, 김 회장, 김회장의 동생(경주감옥) 이 외에 김상원, 김인기, 김생원, 서유도 베드로의 부인 전주이씨(1813) 등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고 전해지며 대부분 상주 감옥에서 치명되었다.
한실 교우촌은 경상북도의 사도로 불리는 칼래(Calais, 姜, 1833-1884년) 신부가 병인박해 때 백화산을 넘어 문경과 연풍 등을 다니면서 전교에 심혈을 기울였던 사목의 중심지였다. 칼래 신부는 이곳을 중심으로 인근의 건학, 여우목, 사실 교우촌과 백화산 너머 연풍 등지의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며 전교 활동을 했다.
안동교구는 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아 순교자 현양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 9월 12일 상주시 함창읍 나한리의 한 논두렁에서 순교자 서유형 바오로의 묘소를 발굴해 유해와 묘소 흙 등을 옹관에 담아 한실에 새로 조성한 무덤에 안치했다. 그리고 형수인 순교자 박 루치아의 가묘도 조성하였다. 서유형은 경상도 지방의 첫 신자였던 서광수의 친척으로 문경시 산양면 평지리 일대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1865년 10월 부인 성재추 막달레나, 7세 된 딸과 아들 순보(3세), 하인, 형수 박 루치아 등과 함께 체포되어 상주 진영으로 압송되었다. 가족들은 모두 풀려났지만 서유형과 그의 형수인 박 루치아는 1866년 겨울 상주 옥에서 순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