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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3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대축일 경축이동] "순교자들의 후손답게 삽시다."

사목국이메일


순교자들의 후손답게 삽시다.


중국에서 들어온 천주교 서적을 읽으며 함께 모여 공부하던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 이승훈이 중국 북경에 가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이벽, 권일신 등 함께 공부하던 이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로써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1784년의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이 해를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점으로 봅니다. 그렇게 보면, 한국 교회는 234년의 역사를 지닙니다. 비록 짧은 역사지만 한국 교회는 특히 초기 역사에 있어 놀랍고 자랑스러운 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한국 교회는 우리 선조들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여 시작되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교회는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고 그 바탕 위에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구도자들에 의해 복음이 받아들여졌고 성장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느님의 섭리이며 은총입니다.
둘째, 한국 교회는 평신도들에 의해 기초가 다져지고 자라났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양반들이었지만 차차 일반 백성에게, 그리고 천민이라고 불리던 이들에게까지 복음이 퍼져나갔습니다. 당시에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비쳐졌습니다. 다른 신분의 사람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제사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교회에서 제사를 미풍양속이 아니라 미신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할 때 이 땅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신자들은 당연히 제사를 거부하였으며 이것이 박해의 또 다른 빌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갖가지 비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전해진 지 6년 후에는 신자수가 4천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기 신자들은 한동안 사제 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제 없이는 신앙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사제를 영입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 교회가 북경교구에 속하게 되고, 1795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은밀히 서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지 11년 만에 사제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6년 후인 1801년 신유년에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주문모 신부와 3백여 명의 신자들이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복음을 더욱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각처로 흩어진 신자들은 피난처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에 따라 박해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 후 다시 사제를 영입하기 위해 힘을 쏟았는데 앞장서서 애쓴 이가 바로 정하상 바오로입니다. 평신도 지도자 역할을 했던 그는 사제를 영입하기 위해 중국 북경을 아홉 차례나 내왕하였으며, 교회 부흥 운동을 펴나갔습니다. 그 결실로,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는 조선 교구를 설정하고 프랑스 선교사들의 모임인 파리외방전교회에 한국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복음이 전해진 지 47년만입니다. 그리하여 1836년 프랑스인 모방 신부가 입국하여 한국인 사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바로 그해 김대건 등 세 명을 뽑아 사제의 길을 걷도록 중국 마카오로 보냈습니다. 그후 엥베르 주교와 프랑스인 신부들이 입국하였으나 박해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초기 50년 동안은 중국인 신부가 잠시 사목활동을 했을 뿐 1836년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입국할 때까지 사제 없이 평신도들만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교회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중국인 신부, 그리고 파리외방전교회 주교와 신부들이 있었다 해도 다들 외국인이고 박해 시기였으므로 평신도들의 협력이 없이는 활동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 교회는 평신도들에 의해 기초가 다져지고 자라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한국 교회는 순교자의 피로 자라난 교회입니다. 초기 약 100년간 크고 작은 박해가 지속되었는데 그 중 전국적인 큰 박해가 네 번 있었습니다. 박해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은 만여 명이 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분들 중 103분이 성인으로, 124분이 복자로 선포되었으며 지금도 시성 시복 운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같이 자랑스러운 초기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03위 순교 성인들의 축일인 오늘, 특히 평신도 순교 성인들의 신앙을 되새겨 보고 본받도록 합시다. 박해 시대는 아니지만, 신앙을 목숨보다 귀한 가치로 여기고 신앙을 삶으로 증거하는 순교 정신만큼은 우리 안에 살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평신도 희년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시대 우리 평신도들에게 어떻게 살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라실지 생각해 보고, 순교자들의 후손답게 기쁘고 떳떳하게 삽시다.

강구 본당 이성길 프란치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