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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연중 제30주일] 가장 큰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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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계명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반대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몇 가지 논쟁을 제시합니다. 세금 논쟁(22,15-22), 부활 논쟁(22,23-33), 큰 계명 논쟁(22,34-40), 다윗의 자손 논쟁(22,41-46) 등 입니다. 이런 논쟁의 주된 목적은 우리가 짐작하듯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의논 했었고(22,15) 오늘 복음에서 또다시 한데 모였다는 것은, 예수님을 적대하는 이들의 모임이 정기적이고 조직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한데 모인 바리사이들 중 한 사람이 그들을 대표해서 물음을 제기합니다. 아마 이 사람은 바리사이들 가운데 출중하고 율법 지식에 탁월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대에 율법 학자들이 오래도록 사색하고 논의하던 물음을 제기합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태 22,36)

당대에는 준수 규정 248조항과 금지 규정 365조항을 합하여 모두 613조항을 율법 규정으로 준수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지를 묻는 물음이라, 전체 율법 규정에 통달하지 않고는 답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어떤 누구도 딴죽을 걸 수 없도록 열심하다는 신앙인들이 날마다 여러 차례 바치던 쉐마 기도문에 담긴 신명기 6,5의 말씀을 꼽으십니다.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으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도 이와 같다면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둘째는 중요도의 순서가 아니라 나열된 순서일 뿐입니다.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산상설교의 말씀과 연관시켜 본다면, 여기서의 이웃은 친지들만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지침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5,43-48). <마태오 복음, 이우식, 참조>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나누고 봉사하며,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보여주는 훌륭한 징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분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을 종종 만납니다.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봉사하면서, 옳은 것을 위해 노력하면서, 성실히 기도하면서도 자신은 부족하다고 여기거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기대치가 높거나 자존감이 낮아서, 또는 지나친 책임감이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인간관계가 어려워져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적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해도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게 되고, 만족을 모르니 행복에서 멀어져 있게 됩니다. 결국 의도치 않게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못한 모습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기대치를 조금 낮추는 것입니다. ‘이정도면 괜찮아, 항상 모든 일을 잘 할 수는 없잖아,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는 없잖아라고 생각하는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격려할 줄 아는 것입니다.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어, 정말 수고 많았어,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제는 잘 할 수 있어라는 자세에서 옵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이정도면 괜찮지, 누가 뭐라해도 흔들리지 않을거야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는데서 나오고, ‘모든 것을 내가 감당할 필요는 없어, 나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야라며 지나친 책임감을 줄이는데서 비롯됩니다. 쉬운 길은 아니지만, 노력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여정을 통해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조금씩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반대자들의 무리와 마주하십니다. 그들은 이미 그분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작정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런 속마음을 아시고도 예수님께서는 화를 내지 않으십니다. 불안해 떨지도 않으시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굳건하십니다. 자존감이 확고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이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을 사랑하면 흔들리지 않고 더욱 깊이 있게 이웃과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성 본당 황영화 마티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