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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수선탁덕

사목국이메일

수선탁덕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을 밟고 들길을 갈때에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 모름지기 헛 발걸음을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결국, 후인의 길이 되리라

 

[출처] 서산대사 말씀중 눈길을 갈때에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다른 호칭은 수선탁덕입니다.

수선이라는 말은 가장 먼저라는 말이며, 탁덕이라는 말은 사제를 가리키는 중국식 표현입니다. 그 말의 뜻은 덕을 행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먼저 덕을 행할 수 있도록 지도했던 분이 바로 김대건 신부님입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장서서 먼저 걸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큰 용기이던가 아니면 무지로 인한 막연한 객기일런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든지 확신이 없으면 누군가의 앞에서 이끌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객기였는지 참용기인지는 훗날이 그 답을 말해줍니다. 훗날을 살고 있는 우리가 어쩌면 그 답이 될 것입니다.

170년 전 그는 늘 앞장서는 자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한국인 중에 아무도 해보지 않은 서양학문을 배우러 유학을 갔고, 한국인 중에 처음으로 사제가 되어 모진 고난 속에 배를 타고 양떼를 찾아 제주도로 서해안으로 참된 목자의 길을 헤쳐왔고, 사제 중에 맨 처음 하느님을 죽음으로 증거하였습니다.

순교자는 언제나 살길이 있으나 더 큰 살길을 찾았던 사람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서 맞이하게 되는 이들에게 순교자라는 호칭을 붙여서는 안됩니다. 억울한 테러의 희생양과 스스로 하느님을 증거한 순교자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테러의 희생양이 아닙니다. 하느님만 버리면 호의호식할 수 있는 살길이 있었던 분입니다. 하느님을 버리지 않았던 신덕이 있었습니다. 목을 내어놓지만 하느님나라의 입성을 늘 그렸던 망덕이 있었습니다. 하느님 때문에 그에게 맡겨진 양들을 온몸 바쳐 돌보던 애덕이 있었습니다.

덕이라는 말은 어쩌다가 한 번 행한다고 해서 덕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변함없이 꾸준히 신망애 삼덕을 늘 살아왔던 분이였기에 망설임 없이 하느님을 증거하며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선탁덕은 겨우 1년 사제의 길을 걸었지만 그는 서산 대사의 말씀처럼 훗날 사제들의 모범이 됩니다.

1년을 살아도 평생을 산 것처럼 조심스럽게 헛도는 발자국 없이 하느님나라를 위해 걸었던 분입니다. 조심스러운 그 걸음에는 분명하고 무거운 신앙이 자국을 내고 있습니다. 그 자국이 후배사제들에게도 길이 되어질 것입니다. 하느님과 신자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수선탁덕의 삶의 발자국은 우리 후배 사제들에게 성찰과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덕을 행할 수 있도록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가르치지 못하는 부끄러움 말입니다. 그래도 수선탁덕이 향했던 길을 보며 또다시 후배 탁덕들은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여러분도 신앙의 길을 어지러움 없이 조심스럽게 걷길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부끄러움과 성찰의 길이 되어주십시오. 누군가에는 신앙의 길잡이로 당신은 살고 계십니다.

 

 

농은수련원 차광철 베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