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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감탄고토(甘呑苦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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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고토(甘呑苦吐)


주님 수난 성지주일은 마치 성삼일을 예습하듯이 수난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보여줍니다. 그 수난의 시작은 바로 예루살렘 입성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늘나라가 당장이라도 도래할 듯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극진히 환영하고 기뻐합니다. 밀집한 군중을 헤치며 예수님이 지나갈 자리를 뚫고 가던 제자들도 어깨가 으쓱하고, 예수님을 나름 따른다는 사람들도 나귀 뒤의 행렬에서 우쭐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수난의 전조들을 모두 읽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왜 이리 격하게 환영하고 있는지도, 환영의 높은 구름 위에서 실망의 구렁텅이로 거꾸러질 때 이들이 어떤 폭도로 변할 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군중만이 아니라 제자들에게서 조차 배반의 그림자를 느낄 때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 현세적인 기대를 걸었습니다. 드디어 새로운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뒤집을 구세주가 왔으니 로마를 쫓아내고 우리들만의 강대국으로 만들어 줄 것을 바랬습니다. 자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목격했는데,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기대가 어긋나자 폭도로 변하였습니다. 이들에게 많은 기적과 심금을 울리는 말씀을 많이도 하셨지만, 그들은 받은 은총을 생각지 않고 채워지지 않은 욕구의 빈자리만을 보았습니다. 군중은 일관성이 없었고, 자신의 기분과 입장에 따라 진실과 거짓도 마음대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의 욕구를 하느님으로 모시고 진짜 하느님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까지 소리칩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좋을 때는 엎드렸다가 기호에 맞지 않을 때는 뒤돌아서고, 그것도 조용히 뒤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해코지도 하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군중과 제자들의 배반에도 불평하지 않고 한결같은 사랑을 지켜나갑니다.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억울한 누명과 고발에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숱한 매질과 가시관에도 조금의 저항 없이 끝까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실이라는 뜻은 ‘열심’을 말하기도 하지만 먼저 ‘한결같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꾸준함은 성실의 덕을 완전하게 해 줍니다. 사실 열심보다 한결같음이 더 어렵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은 우리 자신이 예루살렘 입성의 군중이 되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당시의 상황을 연극처럼 흉내가 아닌 실제의 군중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군중을 체험한다기보다 되어볼 필요도 없이 우리는 그냥 군중입니다. 가지를 흔들며 우리의 꾸준하지 못한 모습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시련과 박해 앞에서 포기하는 모습, 우리의 기호와 애정을 하느님보다 더 절대시하는 모습, 빌라도처럼 무죄를 알면서도 군중에게 비위맞추는 모습,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쉽게 거부하고 미워하는 모습, 예수님께 바쳐야 하지만 게으름과 편안함에 내어준 많은 시간들. 생각해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맞이하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모든 기회주의에 대해 용서를 청합시다. 이런 우리 군중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꾸준함과 성실, 변치 않는 사랑을 본받을 수 있는 은총도 함께 청하도록 합시다.



진보 본당 류한빈 안드레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