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서 성령님 !
지난 겨울에 사제관 공사를 하면서 나무 한그루를 옮겨 심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형제님 한분이 “신부님, 그 나무 살릴 수 있겠어요?”라며 그냥 베어서 땔감으로 쓰자고 했습니다. 사실 저도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컸지만 그래도 옮겨 심어나 보자는 심산으로 잘려나간 뿌리만큼 가지치기를 하고 옮겨 심었습니다. 봄이 되자 새순이 파릇이 돋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진홍색으로 물든 5월의 단풍으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답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영광스럽게 하늘에 오르신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구원의 협조자이신 성령을 보내주신 거룩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요한 14,26)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께서 보내주실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이렇게 보내주신 성령을 교회는 어떤 분으로 체험했을까요? 초대 교회는 성령을 교회의 존재 및 성장에 관여하는 생명의 원리로 이해했습니다. 교회가 일찍부터 예수님은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고백한 사실과 또 미사 때마다 ‘성령의 힘’으로 빵과 포도주가 살아있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 사실 안에서 교회는 성령을 ‘생명을 주시는 주님’으로 깊이 체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성령을 ‘일치를 이루시는 주님’으로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하며 인사를 나누고, 성찬례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며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청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구원의 협조자로 보내주신 성령 안에서 구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많고 많은 삶의 길이 놓여 있지만 그 길이 어떤 길이든 우리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은 일치를 이루며 생명을 낳고 성장시키는 길입니다. 한그루의 나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유기체입니다. 이 생명유기체가 온전히 살아 있고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옥한 토양에서 뿌리가 영양을 흡수하고 순환을 해야 합니다. 비옥한 토양이 곧 성령입니다. 성령 없이는 살아있을 수도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라는 텃밭에서 생명을 주는 양분을 받고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그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선교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고 하신 축복의 말씀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힘이신 성령께서 오시기를 청하도록 합시다. 뿌리 깊은 곳에서 오는 힘이신 성령께서 오시기를 청하도록 합시다. 세례를 받은 우리 안에 이미 현존하고 계시는 성령께서는 오늘 또다시 당신의 현존과 능력을 체험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하느님의 힘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점촌동 본당 김종섭 갈리스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