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성탄이 우리에겐 “새로운 탄생”이 됩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이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는 요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12월 7일 성모 무염시태 축일을 기념하는 전날 일반 알현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무염시태가 주님의 성탄을 내적으로 준비하는 모델이 되듯이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태어나시도록 하자는 뜻입니다. 우리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시는 성탄을 맞이한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누추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마구간은 죄로 물든 우리 자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온갖 죄와 죄의 상처로 뒤범벅이 된 우리 자신은 계속 썩어 들어가 악취를 풍깁니다. 바로 이러한 마구간 같은 우리 안에 하느님은 태어나시려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깨끗한 방을 내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추한 마구간을 하느님께 내어드릴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런 우리 안에 태어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마구간과도 같은 우리 안에 태어나심으로써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던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려 하십니다.
오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요한 1,14) 우리를 구원하시고 살리시기 위해 우리를 몸소 찾아오신 그 놀라우신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는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우리가 일에 지쳐 힘겨워 할 때, 온갖 생활고로 낙심하고 용기를 잃을 때, 배고프고 목말라 하며 갈증을 느낄 때 하느님께서는 몸소 우리의 힘이 되어주시고 길이 되어주시기 위해 오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심으로써 우리를 새롭게 살게 하십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 새롭게 탄생하신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은 우리 자신의 새로운 탄생이 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성탄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탄생이 되는 이유입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공개된 올해 성탄절을 위한 예수 탄생 장식물에 난민선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몰타 정부와 몰타 천주교회가 바티칸에 기증한 이 대형 장식물에는 몰타 전통 옷을 입은 17명의 목동들과 양들의 한 켠에 목재로 된 배가 놓여 있습니다. 교황청은 "몰타가 기증한 이 작품은 몰타의 어업 전통을 나타낼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허름한 배에 몸을 실은 채 거친 파도를 헤치고 이탈리아에 들어오는 난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에 들어온 난민은 17만4천603명에 달하고, 올 한 해 지중해에 수장된 난민 수는 4천715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몰타 공동체와의 일반 알현에서 “오늘날 난민은 허름한 외양간에서 태어난 뒤 이집트로 도망할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처지와 마찬가지”라고 하시며 오늘날 난민의 모습에서 이집트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루카 복음은 ‘우리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알아보는 표징이 된다.’(2,12 참조)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살 곳을 찾아 무작정 떠나는 난민들, 머무를 집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며 삶을 구걸하는 노숙자들, 경쟁대열에서 밀려난 삶의 낙오자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생계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과 영세 농·어민들, 아무도 돌볼 사람 없이 홀로 버려진 외로운 사람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사람들, 온갖 생활고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상처 입은 사람들과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늘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님은 당신이 다시 태어나시는 구체적인 자리로 이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한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짐승들의 거처인 마구간으로 밀려나 가난하고 비천한 말구유에 누워 계신 것은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대로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2,7)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관’이란 이 세상 삶을 여행하는 동안 사람이 인간다운 품위를 가지고 생존을 지켜가는 우리의 주거 공간을 상징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의 공간이나 여유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이 가난하고 비천한 말구유에 누워계시는 이유는 머무를 곳이 없어 밀려난 마지막 한 사람에게까지 삶의 자리 하나, 곧 따뜻한 ‘여관’을 내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삶의 자리들을 마련해주며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용기를 주고 인간답게 살도록 갖가지 배려를 해준다면, 그것이 우리 안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가장 잘 영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대림시기 동안 오늘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고, 몸과 마음으로 깨어 기도하며 열심히 준비했기에 주님의 성탄을 기쁘게 맞이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심’(요한 1,14 참조)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태어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 대로 주님께서 우리 안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이러한 의미에서 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주님께서 친히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오시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새롭게 해주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16년 12월 25일 예수성탄대축일
천주교 안동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