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만난 우리들의 변화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의 기적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라’는 문제에 대해 영국의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답한 내용입니다. 명쾌하고도 곱씹을수록 의미가 더욱 깊어지는 명문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이 주인을 만나 얼굴이 붉어져 포도주가 되었듯이, 우리들 또한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아봄으로써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복음의 핵심으로 알아듣고 싶습니다. 이제 복음 안의 중요한 요소들을 하나씩 짚어보며, 변화되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입니다. 요한 복음은 카나 혼인잔치에서 벌어진 놀라운 사건을 ‘기적’이라 하지 않고 ‘표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요한 복음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적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사람들은 그 기적 자체에만 주목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은 표징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 사건 안에 숨겨져 있는 본 뜻을 겉으로 드러나게끔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 복음 안에서 표징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알아보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표징을 통해 우리 삶의 주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보는 것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느님이심을 알아보는 것이 표징의 진정한 역할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알아보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단순히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 자체에만 주목하게 된다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다는 것은 옛 시대가 새로운 시대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이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옛 교부들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듯이, 율법과 예언서의 가르침을 완전한 계시로 바꾸셨습니다.”(에프렘) “구약성경은 주님께서 풀이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런 맛도 없는 맹물과 같지만,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그분의 설명을 통해서 맛 좋은 술로 바뀝니다.”(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오늘 복음에는 여섯 개의 물독이 등장합니다. 여섯은 완전수인 ‘일곱’에 하나 모자란 구약의 불완전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하나의 항아리를 더 보태지 않고 여섯 항아리에만 물을 채우시고 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신약의 복음 안으로 흡수되어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는 더 보태지도 않고 빼지도 않으시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변화시키고 완성시킨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변화되고 완성되어 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세상 모든 것이 예수님을 만나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변화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모습 안에서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입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 성모님의 역할도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성모님의 말씀에 이렇게 답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성모님을 두고 ‘여인’이라고 표현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두고 ‘여인’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예수님의 불손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공생활 시작과 더불어 성모님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표현은 요한 복음 안에서 딱 한 번 더 나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앞두고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시작과 끝에서 성모님을 두고 ‘여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이제 성모님이 한 아들의 어머니가 아닌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모님은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로서 우리의 구원 역사 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주인을 만난 피조물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표징을 통해 하느님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기적 자체에만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하느님을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알아보는 사람만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변화되고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의 변화가 아닌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성모님의 도움을 통해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로서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변화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인을 만난 물처럼 얼굴이 붉어지는 신앙인으로 변화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사목국 주일학교 담당 사공균 알로이시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