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 새 땅 = 재조산하(再造山河)”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쳐주십니다. 이 치유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왜곡시키는 병을 고쳐주시고, 창조 때의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을 이루십니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가 있습니다. 서애 류성룡이 지은 책이름을 딴 “징비록”이란 드라마입니다. 임진왜란을 겪은 내용을 다룬 드라마였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보니 거기에 나오는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 내용은 오늘 복음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은 진주성이 무너졌다는 소리에 망연자실합니다. 류성룡은 ‘죽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야말로 금수강산 조선 땅 모두가 시산혈해(屍山血海) 됐다. 눈을 감으면 군사들과 백성들의 통곡소리가 맴돌아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에 이순신은 농부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저도 출정하기 전날 밤이면 밤을 못잔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괴롭고 괴로웠다’면서 ‘터전을 다시 찾고, 민심을 돌아오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순신은 류성룡에게 ‘죽음으로 도피하실 생각 말라. 민심을 돌아오게 해야 한다. 그전까지 우리 모두 죽을 자격도 없다. 죽고 싶어도 죗값 치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서신을 남기고 떠납니다. 그 안에는 ‘재조산하(再造山河) : 나라를 다시 만든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류성룡에게 희망을 안긴 글이었습니다.
재조산하(再造山河)! 주님께서 세우실 ‘새 하늘, 새 땅’이 이와 같은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다실 오실 때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의 나라를 하느님의 나라로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그 나라는 1독서의 말씀처럼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이사 35,5-7) 되는 그런 나라가 될 것입니다.
또한 그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는 정의가 이룩되는 평등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자면 너무나 어이없이 불의가 판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진 자는 없는 자를, 힘 있는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해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많은 상황들이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 2독서에서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야고 2,1)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야고 2,5)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이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을 쓰셨던 것이죠.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을 예를 들어가면서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십니다.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야고 2,2-4) 하고 말입니다.
새 하늘 새 땅이 도래하는 때에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이 판을 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이 모든 상황들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진리의 말씀에 귀를 막고 두려움 때문에 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이 바로 영적으로 귀먹은 반벙어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종말 때 주님께서 새 하늘 새 땅을 완성하시기 전에 이 땅에서 우리가 먼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 나가면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 가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구담 본당 신기룡 안드레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