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하여라! 길 떠나는 제자들
공소 교우님들! 우리 주님께서 나누어 주셨던 평화 속에서 안녕하신지요?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때문에 멀쩡한 가축을 땅에 파묻으며 걱정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사스에서 에볼라를 거쳐 메르스까지 괴물 같은 전염병의 확산으로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한편,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129년만의 가뭄으로 농심은 말라버린 논바닥처럼 갈라졌고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손길에 달려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 모두가 제어할 수 없이 뻗어나간 인간의 욕망이 불러 온 자연의 경고라는 생각이 드니 두렵습니다. 그래도 교우분들이 이 강론을 읽으실 때쯤이면 가뭄도 해갈되고, 확산 일로에 있는 메르스도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따르면 아모스는 양과 무화과를 키우던 목자요 농민이었습니다.(아모 7,14) 아모스는 12지파들 간에 맺었던 동맹 정신과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았던 히브리들의 전통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소명을 받습니다.(아모 7,16) 아모스는 국가의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지배층이 행하던 온갖 악행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을 주목합니다. 아모스는 나라의 발전(풍요)이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를 바로 세워 공평하게 모두가 잘 사는 것이고, 그 때에 하느님의 진정한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확신했습니다.(함께 읽는 구약성서 182쪽 참조. 한국신학연구소) ‘낙수효과’라는 달콤한 이설로 사람들을 속이면서 사실은 자기 배를 불리는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모스는 더디 가고, 덜 먹고, 덜 입어도 더불어 잘사는 길이야 말로 노예살이 하던 조상들을 해방과 자유의 길로 불러내신 하느님의 뜻 이라는 것을 선포한 예언자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는 장면인데 몹시도 비장합니다. 먼 길 떠나는 제자들에게 지팡이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옷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니 말입니다.(마르 6,8-11) 예수님이 제자들을 왜 그리도 비장하게 파견 하셨는지는 오늘 복음의 앞과 뒷부분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고 자란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이야기나(마르 6,1-6),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은 헤로데 안티파스가 요한 세례자를 살해하였다는 이야기(마르 6,14-29)가 그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율법의 허구성과(안식일과 정결례에 관한 논쟁들: 마르 3,1-6: 7,3-15 등) 낡은 질서를 타파(계명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적용들: 마태 5-7장 등)하셨으며, 모두에게 공평하고 정의로우며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적대자들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천박한 세속의 논리를 직면하게 될 제자들을 파견하는 예수님의 당부가 비장했던 이유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회당 밖을 떠돌던 사람들, 가장자리의 사람들, 변방에서 떠돌던 또 다른 자신들에게 ‘선포’와 ‘기적’을 일으키도록 파견 됩니다. 제자들은 우여곡절(베드로의 배신, 토마의 불신앙 등)은 겪었으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데 몸과 마음을 바쳤습니다.
옛 사람 아모스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던 때나, 예수님께서 비장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이리떼 같은 세상으로 파견하던 때나 지금 우리 이웃들이 겪고 있는 시대의 질곡도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세상이 주는 달콤함과 일상의 안일함을 잠시 거두고 예수님이 가지셨던 연민과 공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가엾은 약자들의 피울음이 들리고 보입니다. 이제 그 울음과 아우성 속으로 아모스나 제자들이 파견 되었던 것처럼 걸어가야겠습니다.
신기동 본당 김영식 요셉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