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필요하셔서….’
저는 교구의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제가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는 시설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마다 협박에 가까운 으름장을 하느님께 놓곤 합니다. 저는 “하느님,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를 당신이 여기다 데려다 놓으셨으니 이번 일도 당신이 해결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던지 아니면 후원자나 봉사자들을 통해서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을 마련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면서 진정 그분이 저희와 함께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나귀를 준비하시는데, 어느 집 문간에 매여 있는 나귀를 끌어오라고 하십니다. 그때 나귀 주인은 ‘주님께서 필요하셔서 그러는데 곧 이리로 돌려보내신답니다.’(마르 11,3)는 말 한마디에 그저 내어 주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상을 준비할 때(마르 14,12-16)에도 마찬가지로 두 말 없이 2층 방을 내어 주는 모습을 봅니다. 선뜻 내주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이니 선뜻 내어주시는 모습은 저를 감동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모습이 더욱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으시지만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멋진 말을 타고 호위를 받으며 왕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명예를 얻을 수도 있었지만 겸손하신 모습 그대로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빨마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는 군중의 환호와 기대에 부합하여 왕으로 오시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많은 재물로 호의호식(好衣好食) 할 수 있으셨겠지만 그것마저 내려 놓으셨습니다. 또 성전을 정화하지 않으시고 눈 감아 주시면 재물과 권력도 잡을 수 있으셨겠지만 그 또한 내려놓으시고 후세 저희들을 위해 성전을 하느님의 집,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고통스런 십자가의 길을 피해갈 수 있으셨겠지만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하시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십자가의 길, 그 길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모습이었고 초라했습니다. 또 예수님의 구원사업은 실패의 모습이고 하느님의 정의가 패배하는 것 같은 낮은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가지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어 놓으시면서 우리들을 생명의 길,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이끄시려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느님 우편에서 우리들이 빗나가지 않고 당신께로 오기를 기다리시며 우리들의 요구를 항상 기쁘게 들어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고 내어 주셨던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이 땅에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우리들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필요하시다’고 할 때 나귀와 2층 방을 내어 주었던 의인들처럼 우리도 주님 구원사업에 내가 가진 조그마한 것이라도 ‘네’하며 기쁜 마음으로 내어 놓음으로써 얼마 남지 않은 부활, 말로만 끝나는 구태의연(舊態依然)한 부활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새로운 부활을 체험하도록 해 봅시다. 아멘
사회복지회 남정홍 스테파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