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한 소년이 길가의 담장에 얼굴을 대고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때때로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행인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저 아이가 저렇게 난리지? 혹시 저 아이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소년은 담장 너머에서 벌어지는 야구경기를 담장구멍을 통해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안타를 치고 홈런을 칠 때마다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행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는 그 소년은, 행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소년이 담장 안에서 벌어지는 야구를 구멍을 통해 보고 있듯이, 우리는 미사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보고 있습니다. 담장 밖의 사람은 소년이 야구를 보고 있는 것을 모릅니다. 교회 밖의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미사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보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소년은 때로는 펄쩍펄쩍 뛰었고 때로는 소리치고 환호했습니다. 미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분명한 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세주 예수님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응원하는 팀이 잘할 때마다 소년이 환호했듯이, 우리 역시 미사성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말씀의 은총과 성찬의 신비에 환호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을 보고 있는 우리가 환호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고 영적인 기쁨이 충만하지 않다면 안 되지 않을까요?
오늘은 바로 주님의 엄청난 신비이자 구원의 분명한 표징인 미사성제가 제정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온전히 내어주신 날입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십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고린 11,24-25)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몸과 피를 내어주시고, 또한 구체적으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며 종이 하는 일을 하십니다. 고개를 숙여야지만 발을 씻겨 줄 수 있기에 겸손의 표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세상을 떠나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극진히 사랑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13,14) 예수님은 고개를 숙여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줄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함을 손수 보여 주신 것입니다.
스승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 종이 되셨듯이, 서로의 종이 되어주고 서로의 발을 씻겨주며 환호와 기쁨이 충만한 성찬의 삶을 살아갑시다. 그러한 삶이 주님 사랑에 대한 보답이고, 십자가상의 피흘림에 대한 의미이며, 보다 더 살맛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게 할 것입니다.
다인본당 허춘도 토마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