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돼지는 죽을 때까지 하늘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목뼈가 아래쪽으로 굽어 있어서 아무리 고개를 들어도 수평 이상은 올릴 수 없다고 합니다. 평생 땅바닥만 바라보며 먹고 살게 되어 있지요. 우리 인생도 평생 바닥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하느님 없이 세상의 것만 쫒아서 먹고 살기위해서만 발버둥치는 인생은, 땅만 보며 사는 인생은, 돼지수준의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돼지에게 하늘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넘어져서 뒤집어졌을 때입니다. 뒤집어졌을 때 돼지는 하늘을 발견합니다. 세상이 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새로운 세상을 봅니다. 뒤집어 지는 경험이 새로운 세상을 보는 축복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원치 않게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질병으로 뒤집힘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원치 않는 가정의 붕괴로 뒤집힘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원치 않는 경제파탄으로 뒤집힘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넘어지고 뒤집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뒤집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기도 합니다.
뒤집어져야 보이는 세상이 있기에, 원하지 않게 뒤집어 졌지만 새로운 세계를 보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면 뒤집어지는 경험이 유익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재현하는 성주간이 시작되었고, 교회전례는 일주일 내내 십자가의 길을 재현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예수님께서 넘어지시고 뒤집혀지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뒤집힘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세상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마태 21,9) 이스라엘 군중들은 나뭇가지를 들고 겉옷을 깔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했습니다. 기대하는 것이 많았던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잘 살게, 풍요롭게 이 괴로운 현실에서 해방시켜줄 분으로 기대했습니다. 부귀영화를 꿈꾸며 권력을 가진 왕으로 기대를 했지만 예수님은 겸손의 왕, 종으로서의 왕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실망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수난 복음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지만, 그것은 곧 예수님 자신이 고통을 받고 죽으시기 위해 들어오신 것을 암시하기 위해 수난복음이 읽혀진 것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고통과 수난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성주간, 우리도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주간이 됩시다. 십자가의 길에 깊이 동참할 때 주님은 새로운 세상, 부활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다인본당 허춘도 토마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