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밤하늘의 별은 아름답습니다. 특히 겨울 밤하늘의 별들은 더욱 차갑게 빛나 보이며 어릴 때 들었던 동화 속의 한 장면도 떠올리게 합니다.
과학이 발달 되지 못한 옛날에는 밤하늘의 별이 어두운 밤에 방향을 알려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기도 하고 별을 통해 시간을 알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별을 보면서 길을 찾거나 시간을 짐작하지는 않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하여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시간도 쉽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별은 과학 문명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시의 한복판이나 시골의 어느 구석에서나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이 세상에 빛이 되어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 만백성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날입니다. 특별히 오늘 예수님은 세상 모든 민족들을 대표하는 동방박사를 통해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박사들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목동들처럼 천사가 나타나 그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게 된 것은 그분의 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박사들이라고 하지만 실제 원문에서는 점성술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고 세상의 징조를 알아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별을 보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들 역시 메시아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 반드시 큰 별이 떠오를 것이라는 그 예언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그 간절한 기다림이 아기 예수님의 별을 보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 별이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에게도 보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구세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못지않게 모든 민족들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실 메시아를 필요로 했다는 것입니다. 자비로우시고 사랑 가득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런 모든 백성들의 바램을 저버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구세주가 탄생했다는 위안과 함께 구세주가 태어나신 곳을 가르쳐주는 별을 따라 동방박사들은 길을 떠납니다.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오로지 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 별이 일단 멈춰진 그곳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헤로데 왕이 있었습니다.
헤로데에게 박사들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왕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왕을 찾는 동방박사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찾던 왕은 결코 예루살렘의 화려한 궁궐 안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힘과 권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박사들은 수석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의 도움으로 새로 태어나신 왕이 계신 베들레헴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에게 경배합니다.
박사들이 수만리를 걸어서 경배하러 온 그 왕은 세상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애당초 그런 왕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선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황금은 임금을 상징하고, 유향은 신(神)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몰약 입니다. 몰약은 죽은 사람의 몸에 바르는 약입니다. 즉 그들이 본 별은 바로 하느님이시며 임금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힘과 권력이 아닌 당신 십자가 죽음으로 겸손과 약함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실 임금님이셨던 것입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시끌벅적한 도시의 소음 속에서 우리는 빛나는 별을 잘 볼 수 없습니다. 반대로 어둡고 고요한 곳에서는 빛나는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별을 보려면 밤이 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과 어두움과 고요함 속에 별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해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과 위안을 줍니다. 우리는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약하고 힘없는 이웃을 돌볼 때 예수님께 인도한 그 별이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해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땀 없이 이룬 성과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땀과 노력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우리 이웃과 함께 항상 우리 곁에 머무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옥산 본당 윤정엽 세례자 요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