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사목교서(교구장 취임사)
먼저 하느님께서 미천한 이 종을 당신 백성의 봉사자로 부르심에 겸손되이 저 자신을 봉헌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를 한국천주교회 주교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주신 모든 주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를 안동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기꺼이 맞아주신 교구 사제단과 교구 신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주변세계의 분위기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진정한 평화가 드러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제적으로는 폭력과 테러와 전쟁으로 인한 민족과 나라간의 갈등과 분열, 국내적으로는 남북분단과 동서간의 지역갈등과 계층간의 오해와 불목, 개인적으로는 온갖 이기심으로 인한 서로간의 적개심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참 평화가 다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모두 고귀하며 존엄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박탈하거나 짓밟는 사람은 결국 하느님께 도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똑같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도 종교도 어느 개인도 이러한 인간의 기본 권리를 박탈할 수 없으며 오히려 보호하고 진작시켜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의 새로운 법을 제시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을 때 여기에는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추구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러한 사랑만이 오로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친애하는 안동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새 교구장을 맞이하며 드리는 기도’에서 안동교구의 어제와 오늘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면서 감사하고 간청했습니다. 반성하고 다짐했습니다. 지난 32년 동안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의 역사에 저희 안동교구를 참여하게 허락하셨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만큼 성인으로 성장하게 하셨으니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동교구는 어둡고 혼란하던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면서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며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구체적인 사랑을 증거하면서 신앙인의 긍지를 키워왔습니다. 그리하여 성숙한 신앙인은 훌륭한 사회인로도 거듭나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복된 신앙의 열매가 가난하고 작은 안동교구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특별히 배려하신 사랑의 섭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사람의 방법을 고집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어여삐 여기시는 작은 것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내가 먼저 나누고 섬기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몸소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살 것입니다. 신앙의 기쁨과 희망을 이웃에게 전할 것입니다. 특히 수입 농산물 개방정책으로 말미암아 실의에 빠져있는 농민들과 온갖 생활고로 말미암아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웃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나누는 열린 교회가 될 것입니다.
저희 안동교구가 이렇게 성숙한 교회의 모습으로 성장한 데에는 물론 하느님의 각별한 배려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22년간 초대 교구장으로 계셨던 두봉 레나도 주교님과 10년간 제2대 교구장으로 계셨던 박석희 이냐시오 주교님의 노고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천상에 계시는 박 주교님께는 이제 하느님 곁에서 편안히 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교님께서는 더욱 하느님 가까이 계시면서 저희 안동교구를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는 두 분 선임 주교님들의 뜻을 받들어 하느님 백성의 참 봉사자로서 성실하게 살 수 있게 되기를 항구하게 기도하며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교구민들이 신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믿고 바라는 모든 일에 온갖 기쁨과 평화를 가득 채워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2001년 12월 4일
권 혁 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