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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 말씀

교구장말씀후포 본당 견진(2026.06.21)
  • 작성자 홍보전산
  • 작성일 2026-06-22 오후 3:57:27
  • 조   회 17

후포 본당 견진(26/06/21)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28.31)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28.3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이 말씀을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이 말씀은 열두 사도를 부르시고 파견하시는 말씀의 내용 안에서 박해 중에 격려하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전하며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은 두려움 한가운데서도 하느님께 신뢰를 두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말로 두려워하다라는 단어를 포베오마이(φοβέομαι)라고 하는데, 여기서 공포증이라고 번역되는 영어 포비아(phobia)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포증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이 두려움은 단순한 심리적인 두려움을 넘어 존재 자체를 움츠러들게 하는 공포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두려움은 우리 내면에서 말을 하지 못하게 입을 다물게 하고, 진리를 감추고 숨기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압박까지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파견하실 제자들이 이러한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정말로 두려움 없이 말씀을 전하도록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로 제자들을 격려하시며 용기를 주시며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28.31)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반복되는 이 말씀은 제자들의 내면을 정화하고 힘과 용기를 주도록 성령께서 작용하실 것입니다.

 

첫 번째 두려움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라고 하십니다. 복음은 언젠가 드러납니다. 진리는 언젠가 밝혀집니다. 사람의 소문은 크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판단은 날카롭지만 최종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평가는 빠르지만 깊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진리는 늦어 보여도 반드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감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몸을 움츠립니다. “이 말을 하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이 신앙을 드러내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성당 다닌다고 하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가톨릭 신앙의 윤리와 진리를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하지 않을까?” 이렇게 우리는 진리를 때때로 진리를 아예 숨가며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골방에서만 머무르지 말고, 들은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삶의 지붕 위로 올라가라.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쳐라.

두 번째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순교 신앙의 핵심 내용입니다. 세상 권력은 육신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명예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 직장을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영혼을 죽일 수 없습니다. 영혼의 운명은 세상의 손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임종한 어떤 신자가 이런 말을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죽음 앞에서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순간의 느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으며, 신앙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위험보다 더 깊은 차원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육신의 생명보다 더 깊은 영혼의 생명, 세상의 평가보다 더 깊은 심판, 사람의 힘보다 더 깊은 하느님의 손길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 두려움은 자기 존재 가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새 이야기를 하십니다. 참새는 작습니다. 값이 쌉니다. 시장에서 하찮게 거래되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작은 참새 한 마리도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 밖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이 말씀은 참 소중한 말씀입니다. 우리 존재 가치에 대한 결정적 선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한 존재,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시선 밖에 난 먼지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억되는 자녀입니다. 사랑받는 아들, 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대충 대충 챙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전체로만 보시지 분이 아니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섬세하게 챙기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아시고 챙기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죄뿐 아니라 나의 상처도 아시고, 나의 실패뿐 아니라 나의 갈망도 아시며, 나의 겉모습뿐 아니라 나의 영혼까지 살피시며 챙기시는 분이십니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31) 이 말씀은 특히 약한 이들에게 복음이 됩니다. 아픈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나이 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자신을 쓸모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에게 소중하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택하였다. 세상은 너를 잊지만 나는 너를 잊지 못한다. 나는 너의 머리카락까지 세어 두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안다고 증언하는 이를 당신도 하늘의 아버지 앞에서 안다고 증언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사적 취향이 아닙니다. 신앙은 고백입니다. 사랑 고백입니다. 신앙은 관계입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을 고백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미테 10,26.28.3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합니다. 우리는 우연히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 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새롭게 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복음을 증언하도록 파견된 사람입니다. 특히 오늘 견진 성사를 받는 형제자매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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