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마을 교우 한마당 잔치(26/04/24)
부활 3주간 금요일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3)
《최근(4월 20일)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병사가 십자가에서 떨어진 예수상의 얼굴을 망치로 내리치는 충격적인 사진이 공개되어 전 세계적인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파장이 커지자 이스라엘군 측은 해당 병사가 이스라엘군 소속임을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이 행동은 이스라엘군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건을 수습하려 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 간의 설전과 맞물리면서 더욱 큰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의원은 해당 병사의 행동을 ‘예수와 교황을 모욕하는 트럼프로부터 배운 것인가?’라고 비판하며, 종교적 상징물에 대한 존중 부족을 지적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군인의 일탈 행위를 넘어, 국제 사회의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논쟁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였습니다. 예수상 훼손 사건이 발생한 레바논 도시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을 인용하며 침묵시위를 벌이며, ‘아버지,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루카 23,34 참조)라고 한 그들의 메시지는, 만행을 저지른 병사에 대한 비난보다는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깊은 뜻을 담고 있고, 이는 종교적인 갈등 속에서도 인간적인 연민과 성찰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어서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마을은 가톨릭 신자들이 주로 많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합니다.》
일련의 이러한 뉴스를 접하면서, 저는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회심 장면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하기 전의 이름은 아시다시피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사명감으로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을 때, 사울은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며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 길에서 엎어졌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이에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거기서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줄 것이다.”(사도 9,3-6) 사울을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고,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으며,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습니다.(9,6-9) 이후 주님께서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을 통하여 사울을 회개시키시고 세례를 베푸시며 그를 특별히 부르십니다.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고 나서 다시 보게 되었으며, 세례를 받은 후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고 특별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바오로를 파견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요한 6,52-59)에서, 주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바오로 같은 사람들을 새롭게 뽑아 세우시고 부르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살도록 초대하시는 생명의 복음 말씀을 듣고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6-59)
예수님께서는 저 멀리서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곁으로 내려오셔서 지금 우리의 삶에 힘이 되어 주시는 ‘살아 있는 양식’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살과 피를 가진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사셨으며, 오늘도 성체 안에서 살아 계신 분으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받아 모신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영원한 생명을 맛보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머무르신다’는 말은 단순한 거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당신의 신적 생명이 우리에게 증여되고, 선사 되고,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되어 흐른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살’은 우리의 살이 되고, ‘당신의 피’는 우리의 피가 되고, 우리는 그분의 생명 안에서 새롭게 창조됩니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은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바로 그분의 ‘살과 피가 나의 참된 양식이 되고 나의 참된 음료’(요한 6,55 참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예수님과 하나 되어 이 세상 구원을 위하여, 우리 모두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됩시다!
우리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이번 부활 메시지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힘은 완전히 비폭력이며 이것은 마치 땅속에서 자라나 흙덩이를 뚫고 나와 싹을 틔우고 황금빛 이삭이 되는 밀알과 같다.”며 “이는 상처받은 이가 복수심을 버리고, 연민에 차서 자신을 모욕한 이를 위해 기도하는 인간의 마음과 흡사하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이러한 교황님의 모습은 ‘평화의 사도’이자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 오늘날 우리의 고통을 함께 지고 가시는 주님께 봉헌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 됩니다. 우리도 교황님과 같은 마음으로 이 시대의 밀알이 되어 우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