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본당 견진(26/04/19)
부활 제3주일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스승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절한 고통 속에서 돌아가신 곳, 스승과 함께라면 모든 게 잘 되리라는 기대가 산산이 부서진 곳입니다. 엠마오가 비록 낯선 곳이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불편한 곳으로 다가오지만 그래도 예루살렘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보통 기대가 무너질 때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합니다. 성당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심지어 하느님마저 떠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망의 길 위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힘없이 엠마오를 향해 걸어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다가가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말을 건네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이란 높은 도시에서 엠마오라는 가장 낮은 지역을 향해 내려가는 길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내려가는 길일뿐만 아니라, 두 제자의 삶이 희망 없이 땅끝까지 추락하는 체험의 현장입니다.
길’에서 예수와 두 제자가 만난 것은 특별한 상황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을 표현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어떤 신학자(Urs Von Bathasar)의 말처럼 인생의 여정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마련해주는 마당극[신극(神劇, Theo-drama)]이고, 길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과 우리의 만남은 하느님의 은총일 따름이라고 합니다. 이 여정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일상의 탈출기’에 비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시는 모습(루카 24,13.15.28 참조)은 구약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길을 걸어가시던 하느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일어나는 두 제자의 체험은 ‘삶의 탈출기 사건’에 비길 수 있습니다. 무지의 상태에서 깨달음으로, 닫힌 상태에서 열린 상태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탈출기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간단히 말해서, 절망에서 희망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는 파스카 여정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보는 순간 그분은 사라지고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또 다른 길을 떠나야 할 채비를 갖추게 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파스카 여정은 우리 일상에서 계속되어야 하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 부활하신 예수를 뵙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빈 무덤의 허전함만을 안고 있는 상태입니다.(루카 24,19-24 참조) 빈 무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감추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예수님은 메시아 곧 구세주여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부활이 증명되면 예수를 따랐던 고생이 헛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 자리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아직 답답한 상태’였고 아직 유아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었던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길을 함께 걸어가 주시는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데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들에게 기특한 바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참 사실[진리]’을 알려줄 수 있는 분과 대화하고 싶어 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희미한 단계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알고 싶고 찾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들을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듯이, 의심을 위한 의심은 실망을 낳게 되지만 사랑을 위한 의심은 믿음을 낳게 되고, 마침내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24, 25-29) 제자들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한 성서 전체에서 자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공감하며 감동합니다.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모습을 연상합니다. 제자들은 말씀하시는 그분을 벗으로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친밀감을 느껴 함께 묵어가자고 제안합니다. 이처럼 밤을 함께 지내고 싶어 하는 심정은 이미 보통 사이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말씀하시는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말씀’에 사로잡힙니다. 제자들은 밤을 함께 지내자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주관하시는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의 믿음을 ‘말씀이 곧 사람이 되신 예수님’(요한 1,14 참조)라는 고백에 이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피곤함에 지쳐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려고 식사 준비를 게을리하는데, ‘길에서 말씀하시던 그분’이 저녁상을 차려주시며 손수 ‘빵’을 떼어 나누어줌으로써 한 집안의 가장과 같은 행동을 하십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돌아가시기 전 스승 예수와 함께 지냈던 때를 떠올리며 “눈이 열려”(24,31) 스승 예수님을 알아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곧바로 자취를 감추십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24,32) 제자들은 ‘말씀하시던 그분’과 ‘부활하신 예수님’이 같은 분이라는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하나 되는 미사성제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동시에 ‘엠마오’라는 ‘세상 한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특히 오늘 견진 성사를 받게 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 체험을 우리도 우리들의 ‘길 위에서’,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일상에서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합시다. “함께 걸으며 복음을 살아갑시다.”(2026 사목교서) /함께 걸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