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연합회 연수(26/01/31)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저희가 전혀 걱정되지 않습니까?”(마르 4,38)
돌풍이 일어 물이 배 안으로 들이치는데도 예수님께서는 무심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라고 여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40)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활동하시거나 우리를 폭풍우에서 빼내 주지 않으시고 그 폭풍우를 견디도록 하십니다. 디트리히 본회퍼(개신교 신학자)는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난으로부터 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구해주시고, 고통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십자가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어려운 상황에서 전치사의 간단한 변화, ‘…로부터’에서 → …‘속에서’에로는 모든 시각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폭풍우’로부터‘ 빼내 주지 않으시고 그 폭풍우 ’속에서‘ 견디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우리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게 아니라, 당신 자신이 [먼저] 오십니다. 당신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이 세상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예수님 덕분에 역사의 폭력과 위기가 줄어들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 때문에 배척과 박해와 또 다른 십자가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울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루카 21,12)
…
그렇습니다. 왜 삶에서 폭풍우가 일어나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복음 말씀에서 루카도, 마르코도, 마태오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들이 말하는 폭풍우에는 모두 이유가 없습니다. 삶에서 폭풍우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세상 삶이 편안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지금 작은 배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무시고, 우리한테는 무관심하신 것 같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다. 우리 눈에는 어부 출신인 사람들, 폭풍우 속에서 일단은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제자들이 보입니다. 또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최선을 다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그런 다음에 의탁하는 법을 배워라. 모든 게 네게 달려있다.’
모든 것이 바오로 사도가 주장하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모든 것, 호수도 폭풍우도 의심도, 심지어 죄까지도 모두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복된 죄,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모순어법, 곧 복된 역설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이 선이 될 것이다.”(노리치의 줄리안 : 1342-1416, 중세 영국의 여성 은수자) 이 말씀이 마지막 희망이자 총체적 희망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악에서도 죄에서도 죽음에서도 십자가에서도 무덤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떨던 그 날 저녁, 제자들이 예수님께 외칩니다. “저희가 전혀 걱정되지 않습니까?”(마르 4,38) 당신의 친구들이,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살든 죽든 상관없으십니까?’ 눈물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이 말은 ‘당신이 말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군요. 당신은 우리에게 아무 관심이 없으십니다’라는 의미가 담긴 뼈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말씀은 없으시지만 행동하는 힘이 있는 대답입니다. ‘너희는 내게 아주 소중하다. 하늘의 참새가 귀하지만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고, 들판의 백합이 귀하지만 너희는 꽃들보다 더 귀하다. 내가 너희의 머리카락을 모두 새어놓고, 너희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모두 헤아릴 만큼 너희는 내게 소중하다.’(마태 10,29-31 참조) …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폭풍우로부터가 아니라 폭풍우 속에서 구하십니다! 이러한 ‘믿음’에 대한 아름다운 기도를 함께 바쳐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가난하고 추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권세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힘없고 약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명예나 지식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인생을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고
그래서 나에게는 언제나 희망과 용기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