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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 말씀

교구장말씀순교자 현양 대회(2025.09.21)
  • 작성자 홍보전산
  • 작성일 2025-09-25 오전 10:35:34
  • 조   회 43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루카 9,23)

 

2025년 올해는 교회가 선포한 정기 희년입니다.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희년의 핵심 메시지로 희망을 제시하면서, 희년을 거룩하게 지내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순례자가 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으로 우리를 격려하며 희년 선포 칙서도 냈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 그렇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바라는 희망은 하느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확실한 희망이기에 우리는 그 약속을 굳게 믿고 더욱 신뢰하는 마음으로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을 경축 이동 축일로 지내고 있는데, 우리 신앙의 선조들, 특히 우리 순교자들은 모두 오늘 제1독서 말씀의 표현대로,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지혜 3,4) 이미 희망의 순례자로 살아온 분들입니다. 우리가 순교자들의 믿음을 본받아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루카 9,23) 주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살 수 있다면, 우리도 이미 희망의 순례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지난 주일 914일 십자가 현양 축일 강론 말씀 중에 우리들의 십자가 현양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묵상하시고 설명하셨습니다. 이 내용을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말씀과 함께 우리들의 날마다 십자가 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함께 묵상할 수 있다면 그 의미는 더 풍요로울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형제자매들을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의 참모습과 인류를 향한 무한한 연민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증오와 폭력을 스스로 짊어지셨고, 굴욕과 억압을 받는 모든 이의 운명에 함께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이사 53,4) 오늘날에도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어려운 상황과 적대적인 맥락 속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하다가 주님과 같은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그들도 주님처럼 박해를 당하고, 형벌을 받고, 목숨을 잃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마태 5,10-11) 그들은 복음에 대한 충실함, 정의를 위한 헌신, 여전히 침해받고 있는 종교적 자유를 위한 투쟁, 가장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여성과 남성 수도자들, 평신도와 사제들입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그들은 패배자들입니다. 실제로 지혜서는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지혜 3,4)”고 말합니다.

 

이어서 레오 교황님께서는 희년을 맞으면서 희망의 순례자로 초대받은 우리 모두가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아 신앙의 용감한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임을 각인시켜 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희년의 해에 우리는 이 신앙의 용감한 증인들의 희망을 기념합니다. 그들의 순교가 불멸로 가득 찬 희망인 것은 증오, 폭력, 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에 복음을 계속 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이 육체적으로 죽임을 당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멈추게 하지 못하고, 그들이 바친 사랑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며, 그들의 증거가 선이 악에 승리했다는 예언으로 살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914일 십자가 현양 축일 강론 중에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을 구할 것이다.”(루카 9,23) 레오 교황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순교와 박해의 상황이 멈추지 않고 있다고 상기시키시면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순교자적인 삶을 산 오늘날의 신앙의 증인들도 잊지 말자고 하십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땅 없는 농민들을 위해 평생 헌신했던 도로시 스탕 수녀님의 복음적 용기를 떠올리십니다. 수녀님을 죽이려는 자들이 무기를 내놓으라고 할 때, 그분은 조용히 성경을 들어 올리며 이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홍유한 선생이 생전에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았을까 하는 잘문도 던져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아직 성경이 없던 시기였기에 홍유한 선생님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성경에서 직접 접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홍유한 선생님의 13년 수계생활의 의미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한변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홍유한 선생의 수계생활 내용과 몇 가지 일화를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옮겨 적어 봅니다.

 

그는 1770년에 천주교 서적을 발견하여 다른 공부는 모두 버리고 그것만 기꺼이 읽었으며 종교생활의 실천에 전념하였습니다. 축일표(祝日表)도 없고 기도 책도 없이, 7일마다 축일(祝日)이 온다는 것만 알고 그는 매달 7, 14, 21, 28일에 경건하게 일을 쉬고, 이런 날에는 속세의 모든 일을 물리치고 기도에 전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금육일(禁肉日)을 몰랐으므로, 그는 언제나 가장 좋은 음식은 먹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으며,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본성(本性)의 탐욕은 원래 나쁜 것이니 할 수 있는 대로 억제해야 한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하루는 그가 말을 타고 질퍽한 길을 가다가 무거운 짐을 진 한 노인을 보았습니다. 동정심이 일어 말에서 내려 자기 대신 그를 말에 태우고 자기는 걸으면서 그를 인도하였습니다. 또 한 번은 자기가 판 밭이 산사태로 인하여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그 값을 산 사람에게 보내어 그 사람이 사양함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받게 하였습니다. 홍유한(洪儒漢)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고적(孤寂)한 곳에서 묵상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백산(白山)에 들어가 13년 동안을 지냈다고 합니다.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296-297)

 

저는 홍유한 선생의 이러한 수계생활에서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는 예수님의 말씀을 충분히 연결시켜 연상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도와 금욕, 절제와 포기, 희생과 사랑으로 특징지어진 홍유한 선생의 일상은 일상의 순교 영성을 드러내기에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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