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김대건 신부님은 1845년 4월 6일 리브아 신부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신부님들의 순교 모습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제자인 유다에 의해 넘겨졌고, 신부님들은 그들의 제자인 신자에 의하여 넘겨졌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아버지께 순종하시어 죽음을 향해 가셨고, 신부님들은 주교님께 순종하시어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최후의 만찬을 끝내고 떠나셨고, 신부님들은 최후의 만찬으로 미사성제를 봉헌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양들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죽음에 내맡기셨습니다. 이처럼 신부님들은 자기 양들을 위하여 자신을 최고의 형벌에 내맡기셨습니다.” 이 편지에서 김대건 신부님은 순교자의 길이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기 자신에게도 순교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길을 가겠다는 다짐이 이미 서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순교의 삶이 바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인 성찬의 삶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가를 봅니다.
2세기의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주교는 자기 순교를 성찬례의 희생 제물로 이해하며 순교의 길을 갑니다. 그는 주님의 몸인 성체를 먹고 마시길 원할 뿐만 아니라 지고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 위해 스스로 성체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사도들처럼 온전한 제자가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그가 순교의 길을 떠나면서 신자들에게 쓴 편지들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우리에게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 내용을 함께 마음에 새겨봅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교회 교부들의 증언에 의하면, 어떤 교부[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는 ‘순교를 위한 준비와 고통도 피를 흘리는 순교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고, 또 어떤 교부[디오니시오]는 전염병 중에 생명을 바쳐 병자를 돌보는 것도 순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사제에게 있어서 ‘순교란 성찬례의 희생 제사를 정성껏 봉헌하는 행위와 함께 그에 맞갖은 성찬의 삶’라는 것입니다.[사제의 매일 미사 봉헌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스스로 우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그런 길을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십자가를 선택하며 사는 이들입니다.(루카 9,23 참조)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하신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