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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하느님 앞에 고개를 숙이자 (1/2)

시몬이메일

이제  그만 하느님 앞에 고개를 숙이자 (1/2)

 

평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세상살이 하다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절로 나올 때가 있다.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간혹 기가 막히는 일을 당하거나 보았을 때 저절로 나오는 원망과 한탄의 소리이다.

이것이 푸른 하늘을 두고 하는 말이겠는가?

이는 하느님을 원망하는 소리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막아주실 수 있었을텐데 왜 무심하게 보고만 계셨는지 원망스럽다는 뜻이다.

 

하늘이 무서운 줄 알아라. 이놈아!”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참으로 못된 짓을 한 사람을 꾸짖는 말이다.

역시 머리위의 푸른 하늘을 무서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언젠가는 우리의 잘못을 벌하실 수 있는 하느님을 무서워하라는 말이다.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주십시요!”

어린 아이를 가진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가 중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할 때, 그러나 더 이상 의사만 믿고 있을 수 없을 때, 아이의 병상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비는 모습니다.

대체 누구에게 아이를 살려달라는 것인가?


오늘날 과학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은 믿지 못하는 현대인이 생명이 위독한 자신의 아이를 두고는 왜 의사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인가?

역시 사람인 의사는 할 수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죽어가는 아이의 병도 낳게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또 평소에는 신의 존재를 믿지도 않던 임금님도 오랫동안 비가 오지않아 가믐이 극심해져 백성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지면 비를 내려달라고 하늘에 비는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푸르기만 한 하늘이 대체 무엇이길레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비는 것인가?

이것은 임금님도 잘은 모르지만 원하기만 하면 이 땅에 비까지 내려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신이 어딘가에 계심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이같이 사람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절대자 하느님을 찾는 행위가 저절로 나온다.


왜 그럴까?

우리 자신이 바로 전능하신 하느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 창조주의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는 그 하느님을 찾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믐이 들어 농작물이 타들어갈 때는 한방울이라도 비가 아쉽고, 어린 아이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하느님께서 기적이라도 일으켜 아이의 병세가 호전되게 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으니 절대자를 찾는 것이나 아무런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을 때는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이다.

굳이 내 삶에 하느님을 개입시키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관심이 생기지 않는 것이고, 또 하느님을 찾는 것이 귀찮게 생각되어 찾고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보면 일찍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으며,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온 이스라엘 민족들도 그랬다. 아쉬울 때는 하느님께 매달리고 아쉽지 않으면 하느님을 잊고 오히려 하느님이 주신 계명을 어기며 살아왔다. 그런 일을 밥먹듯이 되풀이 해왔다

 

또 어떤 사람은 나만 나쁜 짓 안하고 살면 되는 것이지 굳이 하느님을 찾을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엄연히 계시거늘 나만 나쁜 짓 안하고 잘 살면 되지 굳이 부모님을 생각하고, 찾아뵙고 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자식으로서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이다.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이 엄연히 계시는데 우리의 삶에 별로 필요하지 않다 해서 무시하고 살면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의 모든 것이 하느님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우리 인간의 탄생 자체가 하느님의 섭리하에 이루어진 것이고, 우리의 삶 또한 전적으로 하느님의 섭리하에 이루어지는 것, 즉 하느님의 도움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느님이 어디 있냐?” 라고 하느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이것은 부모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보다도 더 큰 죄악이 될 것이다. 침묵을 지키고 계시지만 인간 삶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참으로 섭섭해 하실 일이 아니겠는가?


이스라엘 민족도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른 민족들이 섬기는 잡신을 섬길 때 하느님께서 가장 크게 노하셨다.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생각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분명히 계시고, 우리의 본능이 그것을 알고 있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이러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고집스럽게도 자신의 생각에 충실하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로 이해가 안 되면 무엇이든 받아들이기 싫어한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지 못하다 해서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없는 것이겠는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다만 내가 아직 모를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내가 알고 있지 못한 것을 알아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직접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가령 서울에 가면 남대문이 있는데 내가 본적이 없다 해서 부정할 수는 없다. 내가 서울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보면 되는데 가보지도 않고 무조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실험해보는 방법이 있다. 있는지 없는지 과학적으로 실험해보는 방법이다.

가령 허공에는 전파가 떠다니고, 햇빛에는 자외선이 있지만 우리 눈이나 감각으로는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엄연히 존재하는 전파나 자외선을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왜냐하면 과학적으로 실험해보면 명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주 신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에 없는 것 같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히 신은 존재하시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조건 없다고 단정지어도 안 되고, 없다고 우겨도 안 되며, 아마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여 무관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있는지 없는지 즉, 하느님이 정말로 존재하시는지 존재하지 않으시는지 확인해보고 결론을 내려야 할 일이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인 신은 서울에 있는 남대문처럼 우리의 시각으로 알아볼 수도 없고, 공중의 전파나 자외선처럼 실험에 의해 알아낼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방법으로는 알아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그 다른 방법이란 창조주께서 우리 인간에게 부여해주신 생각하고 깨닫는 능력, 즉 지성을 통해 깨닫는 방법이다.

하느님이 계신지 안계신지는 인간의 감각이나 실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성을 통해서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며 이치를 따져 깨달아가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하느님이 정말 계신지 안계신지 깨닫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하느님이 없다라던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진리가 아닌 오류에 빠지는 것이며,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혀 크나큰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이 계심을 파악하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보고 무슨 이치를 따져보아야 한단 말인가?

 

이 문제는 앞에 게시된 글 하느님이 정말 계실까?”에서 깊이 생각해본 것이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을 간단히 간추려본다면 이렇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인공물들을 보면 어느 것 하나도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없고 모두 즉, 100% 누군가에 의해서, 어떤 목적하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공물이 아닌 온갖 자연물들 즉, 사람, 동물, 식물, , 천체들은 분명이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데 엄연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이런 자연물들을 관찰해보면 단순히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그 구조와 기능이 신비로울 정도로 완벽하고 정밀함을 알 수 있다.

가령 우리 자신의 몸을 살펴보면 우선 구조가 참으로 정교하고, 완벽하며, 아름답고 신비롭게 만들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들 즉, , , , , , 다리 등의 기능도 신비롭지만 특히 몸속에 있는 뇌, 심장, , 위장, 간장, 신장, 췌장 등 주요 장기는 모두 정밀 자동화 기계로서 참으로 신비롭고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혈관계통, 신경계통, 면역계통 등 주요 생체시스템도 신비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자동화 시스템으로서 이 모든 인체 구성 부분들의 신비로운 작용에 의해 나 자신의 생명이 유지되고 있고,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존재하는 한 이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혹시 심장과 혈관계통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인체 시스템에 대해 깊은 지식은 없으나 알면 알수록 내 몸이 너무도 신비로워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잠시 우리 몸속의 순환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 몸에는 머리는 물론 손끝에서 발끝까지 거미줄처럼 혈관이 배치되어 있고 이 혈관을 통해 끊임없이 피가 순환됨으로써 우리 몸이 정상기능을 유지하고 있는데 피를 순환시키는 장치가 바로 심장이다.

이 심장은 주먹보다 약간 큰 근육질덩어리로서 그 안에 두 개의 방(우심방, 좌심방)과 두 개의 실(우심실, 좌심실)이 있고 이것들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압축과 수축작용을 통해 피를 온 몸의 모세혈관까지 공급하고 또 더러워진 피를 흡입하여 폐로 보내 정화시킨 다음 다시 온 몸으로 보내기를 반복한다.

 

이런 원리에 의해 옴 몸에 혈액을 순환시키는데 순환시스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심장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거의 1분에 60번 내지 100번 압축과 수축을 거듭한다.

만일 이 심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거나 혈관이 막혀서 어느 부분에라도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그 부분에 문제가 생겨 우리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특히 뇌에 혈액공급이 잘 안되면 뇌졸증이 와서 죽을 수도 있다.

    

내 몸 속에 있는 다른 주요 장기들 즉, 위, 장, 간, 췌장, 신장 등의 역할과 기능도 자세히 알고보면 참으로 정교한 기계장치이고, 참으로 신비스런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디.


자신의 몸속에서 장기들이 이런 신비스런 작용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원리를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신경도 쓰지 않는다. 모두 자동화 기계장치이기 때문에 신경쓸 필요도 없다.

 

내 몸이 이토록 신비롭고 정교한 기계장치인데 이것이 사람의 작품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그럼 누구의 작품이겠는가?

  

혹자는 사람이 사람을 낳았으니 사람은 인간의 작품이다라고 할지 모르겠다.

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사람은 100% 사람의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 내 자식을 우리 부부가 만든건 사실이나 우리 부부는 신비체인 내 자식을 만들기 위해 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저 부부간에 사랑행위를 한 것밖에 없는데 아내의 몸속에서 자식이 생겨난 것이고, 임신이 된 사실을 안 후에는 그저 음식과 행동을 조심하며 10개월 가까이 기다려온 것 뿐인데 어느새 태아가 다 커서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더욱이 그 아기는 신비스런 육체만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영혼을 가지고 한 사람의 완벽한 인간으로서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아이가 모태에 있는 동안 인간이 되기 위해 푈요한 모든 신체의 구조와 각종 장기의 구조를 만들고 기능을 부여하는 일에 있어 기술적으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고 싶어도 할 능력도, 기술도, 방법도 없는 것이다.

더욱이 내 자식의 영혼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줄 수 있겠는가?


이런 점들을 생각해보면 내 자식이 우리 부부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은 사실하지만 우리 부부가 만든 것은 분명 아닌 것이다.

 

바로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작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계신 절대자 신, 우리는 그분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바로 그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이 모든 신비스런 일들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이 계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방법이다.

허지만 우리 인간이 절대자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뿐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셨지만 그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알아내려고 애를 써도 알려질 수 없는 것은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4세기의 위대한 교부 중 한 사람인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한다.


 ()은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 어둠 속에 가리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의 신비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즉, 나의 인식능력으로 하느님에 대해 다 알아낼 수가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말이다.

철학자들은 이를 인간의 사유의 한계(思惟限界)’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도 '사유의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문제도 어느 정도 깨달은 다음에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느님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깨달음이 왔으면 이제 의심을 버리고 믿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취할 도리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한계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양 "하느님이 없다"라고 속단을 하거나 "하느님이 있을리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교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비로소 마음속의 오만을 털어버리고 겸허해질 수 있으며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앞에 게시된 글 사람들은 왜 하느님을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에서 많이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창조주 하느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깨닫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하느님의 작품인 온갖 자연물들을 유심히 관찰해봄으로써 그 구조와 기능들이 얼마나 완벽한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끼며,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깨달아야 한다.

온갖 자연물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인간, 그 중에서도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관찰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신비로움과 함께 경이로움을 느껴야 비로소 고개가 숙여지고 하느님의 존재가 받아들여진다.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그마만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른 자연물들 즉, 우리의 먹거리가 되고 있는 온갖 동물, 식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 밤과 낮이 오게 하고,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가 오게 하는 태양계의 정교한 움직임 그리고 지구상에 때가 되면 눈비가 내리게 하는 자연현상 등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이치를 따져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이 저절로 이루지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지능을 기지고 계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섭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위에서 말한 그 모든 것이 신의 섭리가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현상일 따름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 점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속에는 어떤 질서나 법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인간들이 만드는 기계장치를 생각해보라.

아무리 단순하고 간단한 장치라도 목적에 부합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려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연구하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설계를 해야 하며, 그 장치에 들어가는 적절한 재료들을 구해서 공들여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탄생에는 누구의 연구도, 계획도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너무나도 정교한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정교함을 넘어서 신비로울 정도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것들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연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서울에 남대문이 분명히 있는데 가서 확인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없다고 우겨도 안되고, 공중에 전파나 자외선이 분명히 있는데 실험도 안 해보고 없다고 단정지어도 안 되듯이 하느님도 분명히 계시는데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깨닫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단지 볼 수 없다고 하여, 느낄 수 없다고 하여 무조건 없다고 하거나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당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각자에게 그런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 그리고 그 능력을 이용해서 당신이 계심을 알아보고, 깨닫고, 당신께 돌아와 의탁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어 단련시키며 이끌어오셨지만 예언자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한처음에 인간을 만드신 분은 그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제 의지의 손에 내맡기셨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그 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과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맛있는 온갖 먹거리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모든 것을 마련해주셨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무조건 당신을 찾고 당신께 종속되어 노예처럼 살도록 강요하지 않으신 것이다.

, 우리 인간에게 고귀한 자유의지를 부여해 주심으로써 당신을 찾고 안 찾고 하는 문제마저도 우리 자신의 선택에 맡기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단련시키며 이끌어오신 하느님께서는 그 민족과 중요한 계약을 맺으셨는데 그것은 이러하다.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명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중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억지로 당신을 따르라고 강요하시는 것이 아니다. 따르고 안 따르고는 너희 맘이다. 그러나 따른다면 너희를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성경에 의하면 사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택하신 후 그 민족들에게 당신이 바로 창조주 하느님이심을 들어내 보여주시고, 단련시키시며, 이끌어오신 이유는 단지 그 민족이 이뻐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세상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이 계심을 알게 하고, 당신께 돌아와 영혼을 구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러셨듯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잘 행사하여 창조주이신 당신을 알아 경배하고, 당신이 주신 계명을 지키며, 바르고, 착하게 살아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