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추모 및 참회미사 강론
(5월 11일. 부활 제4주일. 안동 목성동 성당. 요한 10,1-10)
황재모 안셀모 신부(안동교구 사목국장)
지난 4월 16일 아침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였다. 총 탑승자 476명 중에서 사망 혹은 실종자가 304명이나 되는 사상 초유의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지금까지 시신이 수습된 사망자가 275명으로 집계돼 29명은 아직까지 실종상태이다.(머니투데이. 5/11 오전 9시)
나도 사고 당일 아침 9시 경에 뉴스 속보를 보았다. 그러면서, ‘아이고! 큰 사고가 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배가 기울어져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뉴스 속보가 떴으니, 해경과 해군들이 금방 달려가 탑승자들을 신속하게 구조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걱정이 되긴 했지만 TV를 끄고 사무실로 나갔다. 그런데 그렇게 기울어져있던 그 배가 그대로 서서히 가라 앉아 버렸고, 그 배 안에 있던 탑승자 중에서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온 국민이 허탈과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은,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던 생명들을 살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왕좌왕하던 정부는 침몰한 배 안에 있던 그 소중한 생명들을 하염없이 가둬놓고 그냥 죽게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런 상황을 속수무책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상황의 긴박함, 가족들의 절실함과는 달리 정부는 지리멸렬하였다. 생사가 좌우되는 결정적인 골든타임에 정부는 지휘의 중심도 책임의 핵심도 없었다. 서로 미루고 허둥대는가 하면, 책임 소재를 걱정하고 일부는 밥그릇을 챙기는 와중에 눈앞에서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실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선실의 학생들처럼 오직 정부의 말을 믿고 기다렸다. 결과는 죽음이었다. 그리고 속속 드러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추악한 어두움들은 우리들의 감정을 슬픔에서 분노로 바꾸어버렸다.
세월호는 근본이 무너진 대한민국의 민낯이었다. 공직사회의 책임 윤리가 실종된 현실과 재물과 권력에 눈먼 사회 전반의 부패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최고 임무인 정부는 ‘정말’ 무능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총체적으로 무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된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저 불쌍한 백성들일 뿐이다. 지난 1999년 6월 경기 화성군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불이 나 자고 있던 유치원생 19명이 죽는 참사가 있었다. 이 참사로 아들을 잃은 국가대표 선수 출신의 한 엄마는 몇 달 후 모든 훈장과 메달을 국가에 반납한 뒤 이민을 떠났다. 이게 뭐냐? 이게 국가인가?
이번 세월호 참사의 상황을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에게 가장 공감을 불러일으킨 말마디는 ‘어른인 것이 미안합니다.’일 것이다. 물론 이번 참사를 야기한 장본인들은 탐욕에 눈먼 일부 세력들이겠지만, 알게 모르게 그런 패덕에 휩쓸려 살아간 기성세대 또한 동질적인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거에 전혀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그만큼 이번 참사의 충격이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큰 파장으로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마디를 연일 쏟아내고 있는 언론을 보면서 묘한 우려를 느끼게 된다. “너도 나도 다 책임이 있다. 그러니 시시콜콜 따지지 말고 수습부터 힘쓰자.”는 논리에 말려들 위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 곧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잘 지켜달라고 뽑아준 대통령(사실 이번 참사의 최고 책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가?)과 정부와 기타 세력들이 전 국민적 애도와 자책의 분위기를 방패로 삼아, ‘거짓 성찰’로 물타기를 하여 혹시 책임 추궁을 피하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어느 일간지에서, “우리는 ‘어른인 것이 미안합니다.’라는 자책의 말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미안한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이번 참사가 일어난 뒤 어른으로서 내가 무엇을 했는가?’ 하는 질문까지 던져야 한다.”는 글이 크게 가슴에 와 닿았다.(성한표. 언론인. 한겨레 5/8)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께서 국민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니라며 '여러분 미안해하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4월 29일 한 인터넷 사이트에 띄웠다.
“국민 여러분. 여러분이 미안할 일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어른으로서 미안해하면 저희가 너무 죄스럽습니다. 내 아들을 지키지 못한 죄는 어찌해야 합니까? 구조할 수 있는 시간에, 시간 지연시키는 거짓말쟁이들에게 속아 회의만 해대는 그들을 보며 엎드려 기도만 했던 이 무능한 아비는 어찌해야 하나요?” 우리가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조차 미안하게 만드는 글이다.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맑고 깨끗한 하늘의 5월을 성모님의 달로 보낸다. 사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를 참 많이 사랑하고 공경한다. 그래서 개신교로부터 더러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성모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나약한 한 인간이었으면서도 그분이 보여주신 겸손과 인내와 사랑과 헌신 그리고 훌륭한 신앙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희생과 고통과 눈물이 얼마나 많겠냐만, 그 중에서 가장 큰 피눈물은 아마도 자식을 앞세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같다’는 단장지애(斷腸之哀)라는 고사성어가 있겠는가? 억만금을 준다 한들 자녀의 목숨과 바꿀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자식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들의 마음이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그 어떤 위로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아주 아주 오래전 마리아라는 여인 역시 사랑하는 아들 예수의 처절한 죽음을 피눈물 흘리며 지켜봤던 한 어머니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모든 고통을 이겨냈다. 그 고통을 허락하신 하느님의 뜻을 헤아렸고,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들 예수의 죽음은 헛된 개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의 섭리에 따라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바쳐진 희생제사 이었음을 신앙으로 받아들였으리라 믿는다.
어느 일간지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일부 어른들의 극악무도함 때문에 바다에 빠졌다. 부조리하고 추악한 세상의 업보를 온몸에 짊어지고 모두를 위한 속죄양으로 바쳐졌다. 희생자들을 기리면서 온 국민이 흘린 눈물은 세상의 비루함과 추악함을 닦아내는 정화수가 되어야 한다.”(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경향신문 5/2)
그렇다. 물오른 새싹 같던 그 아이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은 속죄양으로서의 희생이 되어야 한다. 온 국민이 흘렸던 눈물 또한 값싼 동정의 눈물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와 더러움을 씻어내는 정화수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한 치의 의혹 없이 이번 참사의 철저한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대충 덮어서 정리하려고 하거나 꼬리 자르기식의 책임자 처벌로 마무리된다면 거기에는 하느님의 진노가 따를 것이다. 아니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인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는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단순한 대책이 아니라 국가의 근본 질서를 다시 수립하는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물질과 탐욕을 경계하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철학이 바탕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정권이 과연 이 소임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있기나 한지 의문스럽다.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세월호의 조타실을 이들에게 계속 맡겨도 될지 정말 의문스럽다.
아울러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의 자리를 성찰하면서 나 자신의 역할을 되돌아보면 좋겠다. 패덕한 세월호의 선장을 포함한 선박직 선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모든 국민들을 멘붕으로 내몰았다.
오늘 이 미사 중에 들었던 복음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목자’라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요한 10,3-4) ‘착한 목자’는 ‘양들을 하나하나 다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는 이 말씀이 다시 한 번 가슴을 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일정부분 목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살아간다. 어느 자리에서든가 우리는 선원이요 조타수이며, 항해사 혹은 선장이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 각자의 목자 소임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과 이웃과 세상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고, 그들에게 내가 갖고 있는 구명조끼를 기꺼이 건네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나의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였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번 세월호 참사로 고통 받고 있는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 그리고 여전히 불안과 공포 속에 힘겨워하는 생존자들의 아픔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겠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다 함께 치유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하느님의 자비로 이번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모든 이들이 평화의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하자.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