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강론

천주교 안동교구

말씀마당

이주의 강론
HOME > 말씀마당 > 이주의 강론

[8월 12일 연중 제19주일]"육적인 물음, 영적인 물음"

사목국이메일

육적인 물음, 영적인 물음

 

 

내적 인간의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두고 수군거립니다. 그분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 부르는데, 그분의 신비스러운 탄생에 대해 모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수군거림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해서임을 아십니다. 그들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며, 이것 또한 신비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을 아들에게로 이끌어 주시며, 아들은 나중에 아버지께 나라를 바치십니다. 이는 종속이 아닌,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로 이끌고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께로 이끄십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주신 믿음의 선물 덕분에 그리스도께로 오며, 따라서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이는 강제로 이끌려 온 이가 아니라 진리를 알기를 갈구하듯 그분을 알고자 갈망하며 그리스도의 계시를 본 이입니다.

하느님은 아들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이십니다. 궁극적으로 믿음은 하느님에게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은 사람들 모두가 하느님에게 배우게 될 것이라고 썼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올 것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는 아무도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의 목소리를 통해 가르치시는 것을 듣습니다. 하느님 안에 있는 이들만이 온전하게 하느님을 볼 수 있으며, 아들께서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성령을 통해 그분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는 이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을 죽인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나는 생명의 빵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생명의 빵임을 강조하시는 것은, 죄도 자기만의 고유한 빵, 죽음을 가지고 있고 그분은 죽음과 대립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빵을 먹는 자들은 자기 죄 속에서 죽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당신께서 주시는 한없이 만족시키는 빵을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입니다.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과 우리를 합쳐 하나의 빵 덩어리로 만들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반죽하시며, 이 결합을 통해 부패와 그 안에 숨어 있는 죽음을 파멸시키십니다. 성찬의 살아 있는 빵은 만나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그 빵은 영원한 생명의 실체인 그리스도의 몸을 주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는 이는 합당히 생명을 지닙니다. 이 빵은 곧 죄의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처음에는 우리에게 당신을 젖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기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영적 음식을 주십니다. 그것은 오늘날 성찬 때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금도 비처럼 쏟아지는 만나입니다. 흩어진 알곡들인 우리는 이 빵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거룩한 빵 안에 모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빵을 당신의 이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간의 몸값으로 당신의 육을 내주셨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말씀께서 육이 되심으로써 당신의 육이 생명을 주게 하시어, 그것을 먹는 모든 이가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해 당신의 몸을 바치셨고, 그 몸을 통하여 생명이 우리 안에 머무르게 하십니다.

 

 

문경 본당 최상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