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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연중 제25주일] 감사함이 없는 가슴은 차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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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이 없는 가슴은 차갑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들판의 곡식도 조금씩 색깔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맘때쯤 농부들은 풍성한 수확의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비단 농부뿐 아니라 우리 각자 1년의 결실도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같을 것입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하거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거나, 때 아닌 우박이 쏟아지거나 하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몇 달 전 우박으로 교구내 여러 지역에 큰 피해를 입었고, 본당내 복숭아 과수원 몇 교우농가도 속절없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곧 출하를 앞둔 시점에서 피해를 당하고 한 해 농사를 망쳤으니 그 타들어가는 마음,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노력한 만큼 정당하고 합당한 대가가 따라오지 않으면, 좌절하거나 실망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땀을 흘렸는데 노력에 비해 결실이 적으면 실망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기준에 맞으면 만족하고 정의라 생각하지만 그 기준에 어긋나면 불평하고, 정의롭지 않고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기준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집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똑같은 보수를 받아서 일꾼들이 투덜거렸습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마태 20,11) 도대체 우리의 기준, 상식에는 맞지 않는 일입니다. 한 시간 일했으면 한 시간만큼의 보수를, 열 시간 일했으면 열 시간만큼의 보수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셈법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 20,15)

 

인간은 높고 많은 것을 좋아합니다. 등반가는 높은 산을 정복해야하고, 경제인은 경제지표가 좋아 고수익을 통해 돈이 많아지는 것을 좋아하고, 정치인은 높은 자리에 오르고 정권을 잡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높은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산에 높이 올라갈수록 물이 없고 공기가 부족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집니다. 내려올수록 생명의 강이 흐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비우고 내려와야 합니다.

비우고 내려옴의 절정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간은 자꾸만 올라가려하고 주님은 내려오라 하십니다. 비우고 내려올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우리 기준에는 꼴찌지만, 주님 기준으로 첫째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16)

 

주님은 원하십니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길 원하십니다. 남이 받은 것에 대해 시기, 질투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받은 것에 대해 감사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한 후 처분을 기다리면 됩니다.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루카 17,10)하고 겸손되이 기다리면서 주신 것에 감사하면 됩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미미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본당에서 열심히 전교활동을 해서 예비신자 환영식 때, 서른 명은 와야 되는데 다섯 명밖에 오지 않았어도 그 다섯 명을 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전교 활동한 노력들이 언젠가는 결실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내가 하는 사업에 온 정성을 기울였기에 이번 달에는 3백만 원의 수익이 나와야 하는데, 2백만 원밖에 안 나왔어도 그 2백만 원을 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미워하고 말도 안하고 지내고 있는 이웃에게 큰맘 먹고 인사하고 화해의 악수를 청했는데도 내가 원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여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수확의 계절, 풍성한 수확 열개를 기대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일곱 개밖에 안 나왔어도 그 일곱 개를 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함이 없는 가슴은 차갑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감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 가슴은 너무 추워서 사랑의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가슴의 온도-좋은 생각) 감사가 없으면, 작은 다툼, 작은 상처에도 쉽게 신앙을 포기하고, 감사가 없으면 어떤 말을 해도, 어떤 강론을 해도 차갑습니다. 남이 받은 것에 대해 부러워하지 말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한주간이 됩시다.

 

 

서문동 본당 허춘도 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