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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연중 제14주일]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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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연일 무더운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건강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 어르신들, 더더욱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우리 어르신들이라 하니 특별히 제 마음에 깊이 남아 계신 할머니 한 분이 생각납니다. 돌이켜보면 그분은 저에게 단순한 신자 할머니 이상의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를 만나면 그렇게 편하고 정겨울 수가 없었습니다. 주일 미사에 오실 때마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씩 제 손에 쥐어주곤 하셨습니다. 그 안에는 상추, 고추 등등 손수 기른 채소들이 한 봉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할매요, 제발 좀 그만 가져오세요. 제가 맨날 상추하고 고추만 먹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막무가내셨습니다. 다음 주일이면 또 한 봉지 싸들고 오셨습니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신부님 몸보신해야 한다.”면서 소고기 한 근씩 끊어다 주셨습니다. 덕분에 제가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본당 신부 노릇 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굴은 쭈글쭈글 하셨지만 마음만은 참으로 따스한 분이셨습니다.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발걸음을 옮겨놓을 수밖에 없으셨지만, 그래도 두 발로 걸어 성당에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무척이나 행복해했던 분이셨습니다.

어느 주일날, 그 할머니가 성당 입구 의자에 앉아 계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여쭸습니다. “할매요, 집에 안 가세요?” 그러자 그 할머니가 창백한 얼굴빛으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요, 인제 진짜로 기운이 없어서 성당에 못 올시더.” “할매요, 걱정 말고 이제 성당 나오지 마세요. 제가 찾아갈텡께요.” 그리고는 차를 타고 떠나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목요일 오전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어느 신자분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그 할머니의 사망 소식이었습니다. 너무 놀랐습니다. “다음 달부터 봉성체 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새를 못 참고 그렇게 가신 것이었습니다. “걱정 말고 이제 성당 나오지 마세요.”라고 드렸던 마지막 말이 하루 종일 마음을 콕콕 찔러 참 많이 아팠습니다.

할머니의 장례미사 때 제대 앞에 조용히 누워 계신 할머니께 들려드린 복음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6) 하느님 아버지께서 할머니 안에서 이루고자 하셨던 최고의 선한 뜻을 이렇게 이루셨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냥 잠자다가 하느님 품에 안길 수 있게 해 달라.”는 작은 소망을 이렇게 이루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주일 미사에 참례하여 성체를 모시고, 그냥 주무시는 듯 하느님 품에 안길 수 있게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 멀리 서울에서 어머니의 선종을 위해 기도하는 자녀들의 기도와 함께 하느님 품에 안길 수 있게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신비로운 과정의 끝에 제 입에서 흘러나온 기도는 이 한 마디뿐이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평생을 선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대한 신앙 안에서 살아오신 할머니의 마지막을 은총으로 가득 채워주신 하느님, 할머니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 하느님 그분께 그저 감사 또 감사를 드릴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 특별히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당신을 닮아 살아가고자 애쓰는 이들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아픔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당신의 방식으로 우리 안에서 결국 선하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고 희망 아니겠습니까?

 

하망동 본당 우병현 마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