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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남북통일 기원 미사)] 용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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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가물가물해집니다.

어느 샌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닌 것처럼 인식되어가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종북이니 좌편향이라는 단어로 매도되어가는 듯합니다. 통일이 경제에 미칠 영향과 손실을 이야기하며 점점 더 통일이라는 단어는 세상 물정과 정세를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치부되어지는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발전은 이제 거의 끝에 다다랐다고 이야기하는 어느 교수의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본 듯합니다. 얼핏 기억나기로는 나라의 발전은 인구의 수와 영토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미 인구는 한국의 영토크기에 비해서 정점을 찍었다고 하고 이제는 내리막길이며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영토를 확장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그 방법으로는 통일이 있다고 이야기 했던 것 같습니다.

한반도는 섬나라 일본보다 훨씬 유리한 지리적 우위에 있다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우리는 동서남북 중에 북쪽으로는 배도 비행기도 차도 갈 수가 없어 섬나라 일본보다 더 나은 지리적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통일이 되면 유럽까지도 땅을 딛고 갈 수가 있는 은총의 땅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도 형제간에 불화가 일어나기도 하고 마을에서도 이웃 간에 분쟁이 일어나고 회복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서로가 화해를 시도하려 용기 내어 만나지만 그때 왜 그랬냐?’ 라는 말이 시작되면 다시금 가슴에 불이 일고 폈던 손이 주먹을 쥐게 되어 등을 돌리게 될 때가 많은 듯합니다. 오늘만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일을 살기위해 화해를 하고 싶지만 화해의 악수를 하려니 겁이 납니다. 상대방이 손을 펴주면 나도 주먹을 피겠다라는 비겁한 길을 걷는 것이 안전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화해가 되지 않습니다. 둘 중에 더 큰 마음, 큰 사람이 손을 먼저 펼 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이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사는 이들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만 평화가 있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우리가 큰마음, 큰 사람으로서 먼저 손을 펴서 악수를 청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토록 상대적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비교되지 않을 만큼 우위에 있다고 자부하고 싶다면, 풍요로움에서 오는 큰마음으로 주먹 쥐지 않고 손을 펴주면 어떨까 합니다.

울 수 있는 것도 은총입니다. 아픈데도 울지 못하는 이들을 불쌍히 볼 때 용서의 마음도 생겨나리라 생각됩니다.

예수성심은 개인적으로 함께하는 마음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울고 있는 이들과 같이 슬퍼하는, 웃고 있는 이들과 함께 기쁨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가난한 자의 마음으로 같이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북에 사는 민족들이 잘하게 되면 그때서 함께 하자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죄 많은 세상이 회개하고 난 후에 하느님이 오신 게 아니라 죄 많은 세상에 당신 스스로 사람이 되어 오셔서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용서는 영원히 잊는 것이다.’ 라고 돈보스코 성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일을 위해서, 함께 살기 위해서, 용서의 용기를 발휘해 북쪽의 이웃들을 위해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농은수련원 차광철 베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