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사랑과 일치의 신비 !
얼마 전에 종합 건강 검진을 받았습니다.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 검진이었습니다. 검진을 받고나서 열흘 후에 결과표가 배달되었습니다. 성적표를 받아든 심정이랄까요? 누가 볼세라 몰래 집어 들고 들어와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습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항목들이 있었고, 각 항목마다 건강의 기준이 되는 수치들과 검진 결과의 수치들이 나란히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하나하나를 비교하며 보는 데에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건강 검진 하나만으로도 이 한 몸을 이루는 신비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오늘을 삼위일체 대축일로 지내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성자의 부활 축제와 성령 강림 축제를 지내온 교회가 세상 구원을 위해 하신 하느님의 업적이 모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의 공동 작업이었음을 깨닫고, 그 신비에 찬미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혼자서 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성부께서 일하실 때 성자와 성령께서 뒷짐 지고 먼 산만 보라보고 계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창조 사업은 성부께서, 인류 구원 사업은 성자께서,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성화의 일은 성령께서 하신 일로 돌리지만, 이 모두가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며 함께 하신 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느님의 이러한 속성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서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우리는 기도 드릴 때 때로는 성부께, 때로는 성자께, 때로는 성령께 기도를 드립니다. 성부께 기도 드린다고 해서 성자와 성령께서 나 몰라라 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언제나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저는 잠자리에 들어서 하루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아주 짧은 기도를 드립니다. 하루 중에 나의 삶에서 긍정적이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성부께 감사를 드립니다. 부정적이고 부족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성자께 용서를 청합니다. 성령께는 내일도 새 날을 주시고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지혜와 용기를 주시길 청합니다.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께 따로 기도를 드리지만 언제나 삼위일체 하느님을 의식하며 성호경으로 끝을 맺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에는 성호경을 그으며 오늘도 삼위일체적으로 살 수 있기를 청합니다. 삼위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삼위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처럼 일치된 관계 속에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양하게 핀 꽃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듯이 다양성 안에서도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분열된 모습을 너무나 자주 봅니다. 서로가 추구하는 이념, 살고 있는 지역, 재물을 가진 정도, 성격과 취향 등등 이러한 것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차별하고 외면하는 모습을 봅니다.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되어 반목하며 다투는 모습을 봅니다.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를 극복하는 길은 삼위일체적 삶을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삼위일체적 삶을 살아야 모두가 잘 지내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날마다 실감하며 살아가는 우리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일치를 이루는 일을 완성시켜 주실 것입니다. 삼위의 신비 안에 일치를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오늘 여러분 가정에도 사랑과 일치의 축복을 내려 주시길 기도합니다.
점촌동 본당 김종섭 갈리스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