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
성령 강림 대축일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떠나시고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남기신 사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에 발현하신 사실을 전해줍니다. 그때 예수님은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상처, 흉터를 보여주신 것이지요.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은 예수님 삶의 요약이기에 그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제자들에게 ‘다시’ 보여주고 깨닫게 하셨다는 사실을 극적인 장면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이어서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요한 20,23)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성령을 불어넣으며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진흙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숨을 불어넣어주시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이제 예수님의 숨결인 성령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세례 때 성령을 받아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곧 여러분은 세례 이전과 이후는 다른 존재가 된 것이지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세례 후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도 예수 부활 이전과 이후가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자들이고 교회 공동체이며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런데 이 용서는 무엇입니까? ‘선 자체’이신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그 죄를 씻어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죄를 용서해 주라는 것은 이제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태초부터 원하셨던 세상과 인간의 구원을 이제 너희들을 통해서 계속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성령 곧 우리를 도와주시는 협조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르게 설명하면, 세상과 인간의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하느님을 만나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데 구약시대에는 하느님의 말씀이나 또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예언자들을 통해서 인간은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이후부터는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은 곧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고, 그분을 만나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그분을 만날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은 어디에 계십니까? 성령은 우리 각자 안에 계시지요. 우리 자신은 성령이 머무시는 성령의 궁전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령은 교회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이 없다.>는 말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말이 부정적으로 해석되니 다른 신앙에 대해 배타적이라는 말들을 하기도 합니다. 그 성령은 이제 교회와 함께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계속해나가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바람 같다고, 불꽃같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성령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저 마음으로만 가능합니까? 마음이라는 것은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느님을 내 마음으로 체험했다고 할 경우, 이는 자기 마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적 체험은 내 마음으로 느낀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닫혀도 성령의 활동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마음으로 느낀 것은 우선 내가 마음을 먹어야만 합니다. 성령에 대한 체험은 외적인 어떤 것으로만은 안 됩니다. 성령은 창조의 활동을 하시고, 생명을 살리는 일도 하시고, 구원의 활동도 하십니다. 특별히 이 구원의 활동을 하실 때, 성령께서는 당신 스스로 말씀을 하신다던가 활동을 하신다던가 그러지 않습니다. 반드시 누군가를 통해서 이루어내십니다. 교회를 통해서, 오늘 복음의 표현을 빌리면 제자들을 통해서 활동을 하십니다. 그럼 왜 성령을 불꽃이나 바람이라는 자연현상들을 가지고 설명할까요? 이는 외적인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늘 당신 독자적으로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을 통해서 활동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하느님의 숨결로서의 그분, 내 안에서 나의 생명을 살리시는 그분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매일같이 여러분들이 아침, 저녁기도를 하면서 가족의 손을 잡고 우리 가정 안에 계신 그분의 숨결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우리를 내적 체험에로 이끌어가는 길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느님을 만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생각하고 활동한다면 어떻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기도하실 때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성령께 청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삶이 온전히 예수님의 삶과 일치할 수 있도록 성령께 청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이유는 하느님 당신께서 우리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느님 당신과 우리 인간들이 일치할 수 있게끔 용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일치의 원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에 분열도 미움도 있지요.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성령을 통한 일치뿐입니다. 그 일치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기쁨과 평화를 얻게 됩니다.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사람만이 진정 이웃과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숨결이자 우리 모두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우리 모두를 하나 되게 하는 일치의 원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용상동 본당 정진훈 타대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