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신학생이었을 때 교수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탄은 어디에 많이 있을까? 사탄의 존재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훼손시키는 존재라 우리 신학교에 가장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더 가까이 섬기려 애쓰는 이들이 이 신학교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교에서도 기도하는 성당에 가장 많이 붙어있을 수 있다라며 지나가는 말씀으로 하신 기억이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말씀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많은 유혹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당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오늘 복음의 베드로를 보면 이 말씀이 참으로 맞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냉탕과 온탕을 넘나든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 베드로 사도의 하루가 그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답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극찬을 받고 천국의 열쇠를 받았지만, 바로 이어서 미래에 있을 스승의 수난에 반대하고 나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마태 16,23)고 호된 야단을 맞습니다.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 주인이 되는 영광과 졸지에 ‘사탄’이라는 극단적인 말을 하십니다. 베드로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도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일은 끝없는 갈등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매섭게 질책하고 나서 그냥 뒤돌아서 걸어가실 예수님이었다면 베드로의 그 여리고 단순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하느님의 뜻을 가르쳐 줍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고 말입니다.
바로 앞에서 큰 칭찬을 듣고 또 주님께서 죽으시면 안된다는 충성의 말을 하고서 사탄이라는 욕을 얻어먹는 베드로가 문제 입니까? 예수님의 변덕이 문제입니까?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정 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고자 애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왜 베드로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교회를 세울 반석인 베드로가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고 인간적인 정을 앞세우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 많은 인간적인 판단이 하느님의 뜻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흐를 수 있음도 경계해야합니다. 오히려 정 많은 우리의 위로는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를 떼어놓는 사탄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인간적인 관계들 또 그 속에 숨어있는 이해관계들 속에서 ‘맞다’ 와 ‘틀리다’의 싸움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의 싸움들 속에 과연 이것이 하느님의 섭리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의 인간적인 위로가 때로는 하느님과 사람들의 관계를 훼방 놓는 사탄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때로는 닥쳐오는 어려움을 향해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오히려 아프긴 하지만 더 큰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합니다.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현재는 하느님의 사랑에,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드리는 아오스딩 성인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에 희망을 두는 신앙인입니다.
현재의 아픔과 상처를 직시하고 피할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하느님의 섭리 속에 더 큰 영광을 희망하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신자들의 삶, 베드로가 혼이 나며 깨우쳐 교회의 반석으로, 사도로서 살아간 교회의 삶입니다.
교회는 많은 실수와 잘못을 통해 더 나은 역사를 꽃 피울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회는 하느님의 신뢰를 저버렸던 잘못과 작은 실수들을 무수히 범한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태화동 본당 차광철 베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