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늘 이방인들의 땅 티로와 시돈 지방을 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숨어 지내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피하고,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구상하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존재는 그곳 이방인의 땅에서도 마냥 감추어질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셨고, 급기야 한 부인이 예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아무런 대꾸도 않으시는 예수님께 제자들이 조언합니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마태 15,23)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뜻에 동의하시는 듯 가나안 부인의 간청을 딱 잘라 거절하십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4-26) 병든 딸을 둔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졸지에 강아지 신세가 되고, 딸의 병을 고칠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겼던 분의 입에서 그런 모진 말을 들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선택된 민족’이라 칭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두고 개나 돼지라고 칭해 왔기 때문에 어쩌면 그녀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라는 그분, 그분만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분에 대해 들어왔던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여느 유대인들과는 다른 분이어야 했습니다. 적어도 자기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분은 아니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이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예수라는 분, 바로 그분이 맞는지 혼란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매달렸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이 개가 되어도 좋고, 돼지가 되어도 좋을 일이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여인의 이 말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애원하는 여인을 위해 뭔가를 하실 여건이 충족된 것입니다.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 예수님의 이 선포는 곧바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들 안에서 갖게 되는 의문들, “정녕 예수님께서 여인의 간청을 거절하려 하셨는가? 이방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이 여느 유대인들의 생각과 같은 것이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들도 일시에 해소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여인의 간청을 거절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 간청하는 여인이 이방인이었기에 그 간청을 외면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느 유대인들과 같지 않으셨습니다. 선택된 민족 유대인과 개 돼지 같은 이방인, 남자와 여자, 의인과 죄인을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는 그저 똑같은 아픔을 느끼는 하나하나의 손가락들일 뿐이었습니다.
어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를 집전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오늘 해미에서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하십니다. 신자 비신자의 구분 없이 전 세계가 그분의 말씀과 발걸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하시는 교황님의 모습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기뻐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자신 안에 갇혀 병들어 있는 교회보다는 사고를 무릅쓰는 교회, 사고를 당하는 교회가 수천 배 더 좋습니다! 여러분, 밖으로 나가십시오! 우리는 충돌의 문화, 분열의 문화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을 가차 없이 버리는 폐기의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격식을 따지며 딱딱하게 구는 그리스도인, 차를 마시면서 신학적인 이야기만 즐기는 오직 학문적이고 만사태평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절대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2013년 5월 18일 성령 강림 대축일 전날에 하신 말씀)
교황님의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가, 우리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나약하고 비겁한 존재였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만사태평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구분 지으려 합니다. 나와 너를, 남자와 여자를, 단체와 단체를, 사람과 사람을 구분 지으려 합니다. 더하기 보다는 빼기에, 곱하기 보다는 나누기에 더욱 익숙해져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로 제자들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와 다른 이방 여인이 아닙니까? 그냥 돌려보냅시다!” 라고 말해왔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참 많이도 곡해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여인아,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는 말씀은 애써 무시해 왔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 용기는 바로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나누고 분열시키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로 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신’ 예수님이시지만 그분께서는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 짓지 않으셨습니다.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 장벽을 허물어 없애셨습니다. 세상 모든 이에 대한 하느님의 보편적(가톨릭적)인 구원 의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가톨릭’ 신자임을 고백한다면 더 이상 우리 안에 나누고 빼고 구분되는 이들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와 너’가 아닌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 속에 살아가는 오직 ‘우리’가 있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사목국 차장 우병현 마태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