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님!, 당신의 십자가로
온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교회의 오랜 관습에 따라 미사가 없습니다. 제단은 벗겨지고 십자가는 가려져 있고 촛대도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제물이 되신 곳입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표지나 상징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아니고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날 수 없고, 십자가가 아니고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십자가 위에 오늘 예수님은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천년 전 이스라엘 땅을 거침없이 누비고 다니시며 기쁜 소식을 전파하셨던 분이 유다인의 왕이라고 자칭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십자가위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약자들의 위로자이셨고 병자들의 병을 치유해 주셨던 분이 오늘 십자가 위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권위 있는 말씀과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셨던 분이 오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주신 분이 바로 그 제자들로부터 버림과 배반을 당하는 못난 분으로 오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법정에서 대제관들의 심판을 받고 병사들로부터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사람들로 부터 모욕을 받으시며 아무 저항 없이 무기력하게 오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오직 걸치고 있는 옷 뿐이었는데 그것마저 아무 저항 없이 빼앗기고 오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당신의 어머니와 당신을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에 예리한 칼을 꽂는 듯한 고통을 주시며 오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야말로 완전한 실패자, 무기력한 자로서 처절한 고통 속에 오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와 같이 인간으로서 겪어야 될 수모와 고통, 좌절을 모두 당하시고 결국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절망, 고통, 실패, 좌절들을 예수님께서 똑같이 겪으셨기에 우리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로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완전한 실패의 삶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주님은 당신의 삶이 실패가 아니고 죽음을 이긴 승리라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주님의 수난에, 십자가에 깊이 동참하여 부활의 승리를 맛보도록 합시다.
다인본당 허춘도 토마스 신부
